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건물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성동훈 기자
미국이 백악관까지 나서 쿠팡을 비호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쿠팡 제재와 여권이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의 플랫폼 규제가 미국과의 통상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면 정부·여당이 움츠러들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쿠팡이 이재명 정부의 표적이 됐다”며 “한국 정부의 미국 기술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표적화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성명을 냈다. 미국 하원에 이어 쿠팡의 입장에 서서 한국 정부를 겨냥해 공세를 편 것이다.
이러한 공세는 쿠팡의 핵심 사업 모델인 ‘와우 멤버십 무료배달 서비스’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 여부 결정을 앞두고 나왔다.
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조만간 전원회의를 열고 쿠팡의 ‘와우 멤버십 무료배달 서비스’가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는지를 심의할 예정이다. 핵심 쟁점은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확보한 약 1400만명의 와우 멤버십 가입자를 기반으로 무료배달 혜택을 제공해 시장지배력을 배달 플랫폼인 쿠팡이츠 시장으로 확장했는지 여부다.
공정위가 이번 사건의 매출액을 약 5조2600억원으로 산정해 최대 2014억원(매출액의 4%)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공정위는 쿠팡이 배달 서비스의 품질이나 수수료 경쟁이 아니라 기존 회원을 활용해 경쟁사 이용자를 흡수했다고 본다. 반면 쿠팡은 무료배달이 소비자 편익을 위한 정상적인 가격 경쟁이고 경쟁사도 유사한 구독 서비스가 있다고 맞서고 있다.
공정위는 미국 정부의 압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적과 관계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며 “특정 기업을 차별해 법을 집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가에서는 미국의 이번 입장이 향후 사건 처리 과정에서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가 추진 중인 온플법 입법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온플법은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한 공정거래법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에 특화한 독점 규제를 명시한 법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뿐 아니라 구글, 메타, 아마존, 쿠팡 등 미국 기업에도 적용된다.
플랫폼 규제 입법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도 추진됐지만 이해관계 충돌과 미국의 통상 우려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가 이달 말 마무리되고, 국회 정무위원장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몫으로 확정되면서 올해 하반기 온플법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이 쿠팡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플랫폼 규제를 잇달아 문제 삼으면서 입법 과정에서도 통상 마찰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온플법이 제정되면 미국 플랫폼 기업에도 적용되는 만큼 미국 정부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려를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며 “최근 미국의 기조를 고려하면 경쟁 정책 이슈가 통상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커 입법 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