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아내의 하소연에 오랜만에 매장 일을 도우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일거리는 제가 주로 해오던 튀김이 아니라 우동을 만드는 것입니다. 밤새 우려낸 국물을 일정한 품질로 관리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면을 삶아 국물과 함께 담은 후 이것저것 토핑을 얹어 완성합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습니다. 해면기로 면을 삶는 것인데, 조금만 실수해도 면의 식감에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간혹 물이 끓어 넘치기도 해서 안전에도 주의해야 하죠.
면을 삶으면 면에서 용출되는 성분들이 물의 점성을 높입니다. 그러면 생성된 기포들이 잘 없어지지 않으면서 갑자기 끓어 넘치게 되죠. 따라서 해면기의 물을 수시로 교환해 그 점성을 낮추어야 하는데, 그래도 급할 때 응급조치로 할 수 있는 일은 찬물을 조금 붓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품들이 사라지며 금세 해면기가 안정을 되찾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찬물 붓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면의 표면과 내부의 온도차를 줄임으로써 면의 식감이 개선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죠.
밀가루 성분의 80% 이상은 탄수화물 고분자들이 응축된 입자 형태의 전분이란 물질입니다. 따라서 면이 익는 과정은 바로 이 전분이 익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호화라 부릅니다. 호화란 전분 입자들이 수분을 흡수해 팽창하고, 그러다가 마침내는 입자가 붕괴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면 응축되어 있던 고분자들이 풀어헤쳐지면서 부드러운 식감을 갖게 되죠. 딱딱한 쌀을 밥으로 조리하면 부드러운 식감이 되는 것도 바로 이 호화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호화가 너무 오래 진행되면 고분자들의 해체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면의 탄력성이 저하되어 버립니다. 흔히 ‘면이 불어 터졌다’고 표현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면을 삶다보면 아무래도 면의 표면과 내부의 온도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부로 열이 전달되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부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조리하다보면 표면이 너무 익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표면의 호화가 너무 진행되어 끈적거리고 탄력성이 없는 상태, 즉 불어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끓이던 면에 찬물을 부으면 면의 표면 온도가 내려가면서 호화 속도가 잠시 늦추어집니다. 그러는 사이에 내부로는 열이 충분히 전달되어 익게 되죠. 그러면 표면이 불어 터지지 않으면서도 면을 속까지 잘 익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방식이 잘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해면기의 온도를 쉽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밸브를 통해 물도 쉽게 교환할 수 있어 점성을 높이는 성분들이 축적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삶은 면을 즉시 깨끗한 물로 헹구어 표면의 호화를 억제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특히 짧은 시간 동안 삶는 경우라면 이 방식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게다가 이 방식에는 또 하나의 이점이 있습니다. 호화 과정에서 빠져나온 끈끈한 물질들이 씻겨 나가면서 면의 외관이 매끄러워지고, 국물의 투명도도 더 높아집니다.
이처럼 면을 삶다가 갑자기 추가하는 찬물을 ‘깜짝물’이라고도 부릅니다. 갑자기 찬물이 들어와 면이 깜짝 놀란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죠. 그런데 면만 깜짝 놀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은 과학 원리에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