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탈모약을 먹는다. 30대가 되자 부계 가족력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약을 권유받는 일이 잦아졌고, 사회적인 이미지까지 고려한 끝에 복용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탈모약을 추천받던 2021년은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던 시기와 겹친다. 당시 한 청년 시민이 ‘청년 탈모 지원 정책’을 제안했다. 오세훈 시장이 새롭게 취임한 직후였고, 전임 시장 시절 만들어진 참여기구를 새로운 시정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마침 탈모 정책이 새 서울시장이 생각하는 ‘청년’ 이미지와도 유사하다고 판단해 공식 제안으로 발전시켜 보았는데, 예상대로 서울시가 긍정적으로 응답했고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해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포퓰리즘 같은 가벼운 주제로 여겼다. 그러나 검토를 이어갈수록 생각은 달라졌다. 일단 제안자는 여성으로 다양한 원인으로 탈모를 경험하는 청(소)년 여성들의 고민을 담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탈모 치료를 위해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가운데 여성은 43.4%로, 성별 차이가 크지 않다. 탈모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부정적인데, 청(소)년 여성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더욱 크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남들에게 탈모를 숨기기 위해 가발을 쓰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사실이 드러나면 언제나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스트레스로 탈모를 겪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단순히 취업 과정의 불이익을 넘어 정서적 위협으로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된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은둔·고립 청년의 자립 지원이나 사전 상담을 통해 정신질환을 예방하는 마음건강 정책처럼, 청년 정책은 그동안 개인이 감당해온 문제를 사회적 맥락에서 다뤄왔다. 거대하거나 시급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시민의 일상을 위협하는 문제라면 사회는 함께 논의해야 한다. 탈모 치료 지원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러한 제안이 등장했고 많은 시민의 공감을 얻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당시 제안은 서울시 차원에서 다루기 어려운 사안이었기에 결국 반영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제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이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고, 제21대 대선을 통해 당선된 이후에는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단순하게 바라보면 탈모 치료 지원은 대중을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반드시 건강보험 적용만이 해답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적어도 두 가지는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날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불안’이라는 문제가 어떻게 일상에서 발현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논의할 기회가 생겼다. 또한 건강보험이 중증질환을 우선하는 원칙은 유지하되, 새로운 시대에 시민들을 위협하는 요인을 어떻게 예방하고 돌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하는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탈모 정책을 제안했던 팀의 최종 제안서에는 “금전적인 문제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해소하고, 탈모를 겪는 청년들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인식 변화를 기대한다”는 문장이 담겨 있었다. 정치와 사회가 청년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듣고자 한다면, 이러한 바람을 정책의 언어로 번역하고 합리적인 제도와 예산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