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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국가의 시간이 왔다

입력 2026.07.05 20:04

수정 2026.07.0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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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영국은 전 세계 공산품의 절반을 만들었다. 전 세계 석탄의 3분의 2를 영국이 캤다. 팍스 브리타니카, 영국의 평화가 100년 가까이 세계를 지배했다. 석탄이 영국을 만들었다. 토머스 뉴커먼이 만들고, 제임스 와트가 개량한 증기기관 덕분이었다. 석탄이 증기기관을 돌리고, 증기기관이 방직기를 돌리고, 방직기가 면직물을 쏟아냈다. 면직물이 전 세계로 팔렸고, 그 돈이 다시 철도와 증기선을 만들었다. 철도와 증기선이 전 세계 육지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연결했다.

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에서 에드윈 드레이크가 최초의 상업용 유정을 뚫었다. 그로부터 100년 후, 세계는 석유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석유는 훨씬 더 유연한 에너지였다. 그 유연성이 20세기의 산업을 만들었다. 자동차, 항공기, 석유화학, 플라스틱. 현대 문명의 물질적 기반이 거의 전부 석유에서 나왔다. 석유를 지배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19세기 석탄 독점한 영국부터
20세기 석유와 달러를 쥔 미국
전기·데이터, 세번째 전환 시대
‘3대 메가’는 전기국가 출사표

결정적인 것은 1974년 구축된 페트로달러 시스템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하기로 미국과 합의하면서, 전 세계가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하게 됐다. 달러 수요가 영구적으로 보장됐고, 미국은 종이돈을 찍어서 실물을 사올 수 있게 됐다. 전 세계 석유 거래의 약 80%가 지금도 달러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미국 패권의 숨겨진 기둥이었다. 석유가 달러를 만들고, 달러가 군사력을 만들고, 군사력이 석유 공급로를 지켰다. 팍스 아메리카나. 자유 항해는 미국 패권의 상징과도 같다. 호르무즈가 막힌 것은 그런 점에서 한 시대의 황혼을 상징한다.

이번에는 전기다. 2025년 상반기, 처음으로 태양광과 풍력이 석탄보다 더 많은 전기를 만들었다. 태양광 발전 비용은 지난 10년 사이 90% 떨어졌다. 태양광 패널도, 배터리도 공산품이다. 전형적인 학습곡선을 따른다. 태양광 패널은 지난 30년간 생산량이 2배씩 늘 때마다 평균 20%씩 싸졌다. 리튬이온 배터리 값은 평균 18%씩 내렸다. ‘어떤 제품의 누적 생산량이 두 배가 될 때마다 생산 비용이 일정한 비율로 줄어든다’는 라이트의 법칙이다. 그래프는 오른쪽 아래를 향해 한없이 내리꽂힌다. 석유가 이길 방법은 없다.

세 번째 에너지 전환이다. 이 전환은 한 가지, 앞선 두 번과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갖는다. 전기는 에너지이면서 동시에 정보의 매체다. 전기는 흐르면서 데이터를 만든다. 이것이 모든 차이를 만든다.

전기차는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Software Defined Vehicle)이라 불린다. 모든 물리적 작동이 전기 신호로 번역된 세계에서, 소프트웨어는 그 신호를 읽을 수 있다. 읽을 수 있으면 분석할 수 있다. 분석할 수 있으면 예측할 수 있다. 예측할 수 있으면 제어할 수 있고, 제어할 수 있으면 자율화할 수 있다. 전기는 에너지로서 차를 움직이면서, 동시에 데이터의 매체로서 인공지능(AI)에 세계를 보여준다. 소프트웨어중심차량으로서 전기차는 자율주행을 할 수 있다.

전기차뿐이 아니다. 전기가 닿는 모든 곳에서 같은 일이 일어난다. 공장이 전기화되면 AI는 공장을 읽을 수 있다. 농장이 전기화되면 AI는 작물을 이해한다. 도로가 전기화되면 AI는 교통을 제어한다. 다크팩토리, 스마트팜, 스마트도로다. 전기국가의 시대다.

전기국가는 단순히 전기를 많이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사회 전체를 소프트웨어가, AI가 작동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나라다. 전기는 에너지이자 정보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의 수장 다리오 아모데이는 AI데이터센터(AIDC)를 ‘천재들의 국가’라 부른다. 그곳에서 전기는 지능으로 바뀐다. 전기의 시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능은 얼마만큼일까?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에 사용했던 석탄보다도,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 쓰고 있는 석유보다도 더 많이 필요할 것은 분명하다. 전기가 닿는 모든 곳에서 지능이 쓰인다. 공장에서, 논과 밭에서, 전기차가, 선박이, 자율주행 드론이, 휴머노이드가, 전력망이 지능을 요구한다.

3대 메가프로젝트가 발표됐다. 4755조원을 투입해 반도체와 피지컬AI, AI데이터센터를 전국에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다. 이것은 서방 진영의 제조창 대한민국이 전기국가로 가장 먼저 진입하겠다는 출사표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와 강력한 제조 기반, 쓸 만한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춘 나라가 전기국가 시대를 맞아 그리는 가장 큰 미래의 꿈이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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