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밤을 불길이 집어삼켰다. 검은 복면을 쓴 청년들은 쓰레기통과 폐가구, 공사장 자재를 끌어모아 바리케이드를 쌓고 불을 질렀다. 버스를 태우고,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경찰은 ‘산발적 무질서 사태’를 선포하고 장갑차를 투입했다.
폭동은 전날 벌어진 한 사건에서 시작됐다. 벨파스트에서 수단 국적 난민이 40대 백인 남성을 공격해 중상을 입혔다. 범행 영상은 순식간에 퍼졌고, 이미 반이민 정서가 번져 있던 도시는 들끓었다. 그러나 분노가 향한 곳은 범행 자체가 아니었다. 그날 밤 폭도들이 찾아간 곳은 이주민 가족들이 사는 이웃집이었다.
전문가들은 폭동의 배후 가운데 하나로 ‘액티브 클럽’을 지목했다. 북아일랜드에는 이미 ‘얼스터 액티브 클럽’ 지부가 활동하고 있었고 이들은 폭동 전부터 텔레그램을 통해 이주민을 겨냥한 선전물을 퍼뜨렸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조를 짜 움직이고, 바리케이드를 세운 뒤 빠르게 흩어지는 ‘치고 빠지기’ 방식 역시 이들이 체육관에서 반복해온 행동 양식과 닮아 있었다. 극우 감시 연구자들은 “즉흥적인 분노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조직적이었다”고 분석했다.
체력단련으로 위장, 극우 네트워크
이민자 집에 방화 등 조직적 움직임
스포츠가 의미와 방향을 상실하면
폭력 선동의 도구로 쉽게 활용 돼
액티브 클럽은 2021년 미국 백인우월주의자 로버트 룬도가 만든 극우 네트워크다. 이들은 나치 문양이나 노골적인 인종혐오 구호 대신 종합격투기를 앞세워 ‘자기 단련’과 ‘남성적 유대’를 내세운다. 평범한 청년들은 운동모임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서서히 인종주의 세계관을 받아들인다. 스포츠를 통해 길러진 힘은 결국 거리의 혐오와 폭력을 위해 쓰인다.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 아메리칸대 교수는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에서 “격투기는 군대식 규율과 신체 단련을 둘러싼 이념과 서사를 주류 문화로 전달하는 데 완벽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이 조직에서 스포츠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위장이다. 격투기와 체력 단련은 평범한 운동모임처럼 보이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훈련이다. 강한 몸을 만들고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기른다. 겉으로는 자기계발을 말하지만, 안에서는 인종 혐오를 위한 훈련이 이뤄진다. 액티브 클럽은 현재 27개국 187개 지부로 확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지부 수가 2023년 49개에서 지난해 78개로 늘었고, 청소년만 모집하는 지부도 19곳에 이른다.
왜 스포츠는 이렇게 쉽게 다른 목적의 언어가 될까.
운동은 신체를 단련하는 일이다. 그러나 단련된 신체의 가치는 무엇을 위해 쓰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누구와 함께 땀을 흘리는지, 어떤 가치를 위해 경쟁하는지가 스포츠의 방향을 정한다.
스포츠에서 맥락이 사라지면 규칙만 남고 이유는 지워진다. 그 공백을 액티브 클럽은 놓치지 않았다. 혐오를 소속감으로 포장해 팔았고, 단련은 자기계발이 아니라 폭력을 준비하는 일이 됐다.
스포츠를 다른 목적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극우 단체만의 방식이 아니다. 권력 역시 스포츠가 가진 상징성과 동원력을 적극 활용한다. 지난달 14일 미국 백악관 사우스론에는 이종격투기(UFC) 8각형 경기장 ‘옥타곤’이 설치됐다. 건국 250주년 기념행사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80번째 생일에 맞춰 열렸다. 국가 권력의 상징 공간으로 들어온 스포츠는 정치적 연출의 일부가 됐다. 이날 승리한 한 선수는 인터뷰에서 “미셸 오바마는 남자”라는 허위이자 혐오적인 발언을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는 배재고 야구부 응원석에서 광주제일고를 향해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구호가 나왔다.
무엇을 위해 뛰는지, 무엇을 기념하는지, 무엇을 기억하는지가 스포츠의 의미를 결정한다. 운동은 연대의 장이 될 수 있지만, 폭력을 선동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사회적·정치적·역사적 맥락이 거세됐을 때 스포츠는 쉽게 다른 언어를 입는다. 혐오는 그 빈자리를 가장 먼저 차지한다.
박은경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