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월호 ‘샘터’ 표지(왼쪽)에 그려진 남정 박노수 ‘산수도’의 모습. 종이에 수묵담채,20×18cm, 1977 케이옥션 제공
경영난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 국내 최장수 교양지 월간 ‘샘터’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들이 경매에 나온다.
케이옥션은 오는 21일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에 ‘샘터’의 표지와 내지에 삽입된 원화 49점과 샘터의 컬렉션 11점 등 총 60점을 출품한다고 6일 밝혔다. 경매 규모는 약 8000만원이다.
‘샘터’의 표지·삽화는 한국 근현대 미술이 대중과 만난 기록이다. 1970년대 한국은 화랑 중심으로 미술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미술관과 화랑의 문턱은 높았다. ‘샘터’는 운보 김기창, 남정 박노수, 손응성, 월전 장우성, 김태, 남천 송수남 등 당대 화단 주요 작가의 원화를 표지화로 활용해 일반 대중과 미술의 접점을 만들었다.
출품작은 수묵담채에서 유채, 서예까지 다양하다. 작품 중 일부는 해당 원화가 게재된 ‘샘터’ 잡지 실물과 함께 출품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남정 박노수 ‘산수도’, 손응성 ‘교외의 풍경’, 운보 김기창 ‘도자기’, 남천 송수남 ‘나팔꽃’ 등이 있다.
호암 이병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종이에 먹, 32.5×134.5cm, 1981(경매시작가 1500만원) 케이옥션 제공
원화 외에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1910~1987)의 서예 작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도 눈에 띈다. ‘샘터’ 창립자인 김재순 전 국회의장(1923~2016)에게 이병철 회장이 써준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오랫동안 샘터 이사장실에 걸려 있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이 구절은 호암의 경영 철학과 삶의 태도를 압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옥션 측은 “이번 경매는 ‘샘터’ 56년의 여정이 남긴 원화 작품들을 통해 한국 출판문화와 근현대 미술사가 교차한 지점을 기록으로 되살리는 자리”라고 밝혔다.
‘샘터’는 1970년 4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창간됐다.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채택 등으로 한국어 출판문화의 변화를 이끌었으며, 전성기에는 발행 부수 50만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피천득, 법정 스님, 최인호, 이해인 수녀, 정채봉 등 당대 대표적인 문인들이 고정 필진으로 활동했으며, 소설가 한강과 시인 정호승이 편집부 기자로 일했다.
하지만 ‘샘터’ 역시 종이 잡지의 쇠락이라는 큰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자금난을 겪어온 샘터는 창간 50주년을 앞둔 2019년에도 휴간 방침을 밝혔으나 당시에는 기업 후원과 독자들의 구독 행렬에 힘입어 위기를 넘긴 바 있다. 구독률과 판매 부수 감소, 이에 따른 수익 악화를 막지 못해 2026년 1월호를 마지막으로 6년 만에 재차 휴간하게 됐다.
1977년 2월 ‘샘터’의 내지(41쪽)에 수록된 운보 김기창의 ‘도자기’. 종이에 수묵담채, 33.5×29.5cm, 1972 케이옥션 제공
1977년 7월 ‘샘터’의 표지에 실린 손응성 ‘교외의 풍경’. 캔버스에 유채, 33.4×24.2cm (4호), 1977 케이옥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