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인플루언서 ‘brenndamaral’이 올린 인종차별 제스처. 서경덕 교수 제공
응원은 원래 우리 편을 향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포츠 현장에서는 ‘우리를 응원하는 것’보다 ‘상대를 조롱하는 것’이 더 큰 함성과 웃음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브라질 인플루언서들이 일본을 향해 눈을 찢는 제스처를 하며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북중미 월드컵 응원 과정에서 브라질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SNS 스토리에 지인들과 함께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눈 찢기’ 영상을 올렸다며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불과 몇 주 전에는 멕시코 팬이 한국인을 향해 같은 행동을 했다가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은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 부적절한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이 됐다. 상대의 역사적 아픔을 응원 소재로 삼았다는 비판이 커졌다. 결국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5·18민주화운동을 폄하하고 지역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구호를 외친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학생들이 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앞에 놓여 있는 근조화환을 쳐다보며 걸어가고 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광주제일고와 경기하면서 5·18민주화운동을 폄하하고 지역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구호를 외친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인종도, 역사도 다르다. 사건의 성격 역시 같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두 장면에는 묘하게 닮은 지점이 있다. 상대를 자극하고 모욕하는 것이 스포츠 응원의 일부처럼 소비됐다는 점이다.
스포츠는 원래 경쟁의 공간이다. 승패가 분명하고, ‘우리’와 ‘상대’가 명확하게 갈린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에서는 스포츠를 집단 정체성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공간 가운데 하나로 본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곧 ‘우리’가 되고, 상대 팀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남’이 된다.
문제는 경쟁심이 때로는 상대를 비하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야유와 도발에서 시작하지만, 흥분이 커질수록 외모와 인종, 지역, 역사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생긴다. 2014년 스페인 프로축구 경기 도중 브라질 국가대표 수비수 다니 아우베스를 향해 관중이 바나나를 경기장에 던졌다. 흑인 선수를 원숭이에 비유하는 대표적인 인종차별 제스처였다. 당시 아우베스는 바나나를 주워 한입 베어 물고 던져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9년에는 벨기에 국가대표 공격수 로멜루 루카쿠가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칼리아리 칼초 원정 경기에서 원숭이 울음소리와 인종차별 구호의 대상이 됐다. 최근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멕시코와 브라질 팬들이 아시아인을 향해 ‘눈찢기’ 제스처를 하며 비슷한 논란을 반복했다. 대상은 달라도 상대를 ‘우리와 다른 존재’로 낙인찍고 조롱한다는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왜 유독 스포츠 경기장에서 반복될까.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지펠과 존 터너는 ‘사회정체성 이론’을 통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우리’를 더 높게 평가하려는 마음이 때로는 ‘상대’를 더 낮춰 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스포츠는 승패가 분명하고 응원하는 팀과 상대 팀이 명확히 갈리는 공간인 만큼, 이 같은 심리가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환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다시 말해 “우리 팀이 최고”라는 감정이 “상대는 놀려도 된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수만 명의 관중이 비슷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스티븐 라이허와 러셀 스피어스 등은 ‘사회적 정체성 기반 탈개인화 모형’ 연구에서 군중 속 사람들은 단순히 이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범을 더 강하게 따른다고 설명했다. 경기장 안에서 상대를 조롱하는 구호에 모두가 웃고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도 ‘응원의 일부’라고 여기며 따라 하기 쉬워진다는 의미다.
실제 스포츠 팬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머리주립대학교 스포츠심리학자 대니얼 L. 완은 미국 대학 스포츠와 프로스포츠 팬들을 조사하며 응원팀과 자신을 얼마나 강하게 동일시하는지를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팬이 팀을 자신의 일부처럼 여길수록 라이벌 팀에 대한 적대감과 공격적인 언행을 더 쉽게 정당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발표한 후속 연구에서는 이런 팀 동일시가 강할수록 상대를 향한 적대감과 라이벌 의식도 함께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정리했다.
영국 키일대학교 사회심리학자 클리퍼드 스토트도 잉글랜드 프로축구와 국가대표 경기에서 발생한 훌리건 사건과 군중 행동을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축구장 폭력과 적대적 응원은 일부 과격한 팬의 일탈이라기보다, 경기장 안에서 공유되는 집단 규범이 만들어낸 결과인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한 번 상대를 모욕하는 방식이 ‘재미있는 응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 다음 경기에서도 같은 행동이 반복되고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월드컵의 ‘눈찢기’와 배재고 응원 논란은 서로 다른 사건이다. 하나는 인종을, 다른 하나는 지역의 아픈 역사를 건드렸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상대를 조롱하면 더 재미있는 응원이 된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닮아 있다. 스포츠는 경쟁이지만, 경쟁이 상대의 존엄까지 빼앗을 이유는 없다. 가장 좋은 응원은 상대를 가장 크게 상처 입히는 응원이 아니라, 우리 팀을 가장 뜨겁게 빛나게 하는 응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