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취업 남방한계선 평택인데…“반도체 인재 호남 올까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발표를 며칠 앞둔 6월25일 한 신문 지면을 장식한 헤드라인이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취업 남방한계선은 평택, 연구·개발(R&D) 남방한계선은 판교’란 말이 공식처럼 통한다. 해당 지역 아래로는 일할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뜻이다.”
이 기사의 주제는 뭘까. 품위 있게 포장하면 ‘수도권 일극주의’, 거칠게 말하면 ‘서울병’이다. 서울(그중에서도 강남)에서 멀어지면 세상 무너지는 줄 아는 ‘수도권 상위중산층’ 속내를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광주송정역 기준)는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면 2시간도 안 걸린다. 미국이나 중국 사람들한테 남방한계선 이야기하면 비웃음만 살 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에 80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라인(팹) 4기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용수·전력에 대한 문제 제기는 경청할 대목이 있다. 물도, 전기도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연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인력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다. 의지와 투자가 관건이다. 지역 교육기관의 반도체 관련 정원을 늘리고 관련 기업이 충분히 투자하면 된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삼성전자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반도체공학과)에서 학·석사 통합과정을 운영 중이다. 전력반도체융합전공 인력을 배출하고 있는 한국에너지공대(켄텍)는 에너지공대법 개정을 통해 정원을 늘릴 계획이다. 전남대는 첨단산업융합대학 설립을 추진 중이다. 교육부는 서울대와 거점국립대의 공동 계약학과 운영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삼전·닉스가 최고 직장으로 떠오르며 ‘의치한약수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반도체 계약학과)’이란 입시 서열이 생겨났다. 반도체 관련 전공 정원이 늘어나면 전국에서 우수 자원이 몰려들 것이다. 인재는 ‘지역’이 아닌 ‘기회’를 따라간다. ‘인재가 없다→기업이 가기 어렵다→일자리가 없다→지역 인재가 떠난다→다시 인재가 없다…’ 언제까지 이런 무한루프에 갇혀 있을 텐가.
‘취업은 평택, R&D는 판교’라는 신화
수도권 상위중산층의 속내 고백
인재는 ‘지역’ 아닌 ‘기회’ 따라가
지역균형발전은 ‘국가 형태’의 문제
동탄(경기 화성시 동탄구) 집값이 하늘을 찌른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동탄 역시 ‘남방한계선’ 밖이었다. 평택은 말할 것도 없다. 기업이 들어서자 사람이 모였다. 사람이 모이자 인프라가 구축됐다. 인프라를 갖추자 지역 위상이 달라졌다. 그러니 특정 지역을 향해 함부로 선 긋지 마라. 제멋대로 선 긋는 일은 차별이고 혐오다. 남방한계선 운운하는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서울 안에서도 강북과 강남으로, 강남에서도 각 구·동별로 촘촘히 선을 그어야 할 터다.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습니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가겠습니다.” 2002년 9월30일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출입기자이던 나는 지금도 노무현 대선 후보의 사자후를 기억한다. 역대 대선 사상 가장 야심적이고 혁명적인 공약 발표였다. 헌법재판소의 ‘수도 서울은 관습헌법’이라는 황당한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쯤 세종시는 한국의 워싱턴 DC가, 서울은 한국의 뉴욕이 돼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무현의 지역균형발전 전략과 박정희의 산업정책(중화학공업 육성)을 믹스한, 거대한 도전에 나섰다. 4755조원이 투입될 ‘3대 메가프로젝트’(반도체·AI데이터센터·피지컬AI)는 국토를 재배치하고 산업지도를 새로 그리겠다는 선언이다.
‘이재명의 꿈’이 완성되려면 속도전을 넘어 더욱 넓고 깊은 질문이 필요하다. 지주형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을 빌리면 “지역균형발전은 공간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형태의 문제다. 그리고 국가 형태의 문제는 ‘이 사회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조직될 것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정치적 물음으로 우리를 이끈다”.
남방한계선을 외치는 기득권은 솔직해지기 바란다. 좋은 건 우리가 독식해야 하는데, 남쪽에선 물과 전기만 대주면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더 이상은 아니다. 분업을 가장한 착취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그대들 머릿속의 남방한계선을 지워라.
김민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