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7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유가정보판에 리터당 2000원이 넘게 폭등한 기름값이 표시돼 있다. 검찰은 6일 미국·이란전쟁을 틈타 담합을 통해 유가를 폭등시킨 혐으로 국내 4대 정유사 법인과 임직원들을 기소했다. 이준헌 기자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6일 미국·이란 전쟁을 틈탄 담합과 주유소들에 대한 갑질로 유가를 폭등시킨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국내 4대 정유사 법인과 임직원들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밝힌 이번 담합 등으로 인한 국내 석유시장의 전체 경쟁 제한 효과는 무려 26조원에 달한다. 온 국민이 에너지 위기와 고물가로 고통받던 시기에 대기업들이 담합으로 부당 이득을 챙겼다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지난 3월 미국·이란 전쟁 발발 후 국내 정유사들은 상당한 양의 원유를 비축해둬 가격을 올릴 이유가 없었음에도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결정부서 책임자들은 석유제품 가격 인상 시기와 규모를 담합해 유가를 올렸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 가격결정부서 직원들은 앞선 회사들의 인상을 그대로 따라갔다. 국내 정유시장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을 나머지 두 정유사가 추종(참고)하는 구조다. 검찰이 파악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는 14조2000억원이고, 나머지 두 회사가 추종한 것까지 감안하면 총 26조원 상당의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했다. 4대 정유사가 국내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전형적인 과점 시장의 횡포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유사 직원들이 메신저를 통해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우리 올해 2조 벌 듯”이라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드러나 이들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석유는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핵심 품목이다. 기름값 폭등은 물가를 자극해 서민들 삶을 힘들게 하고 기업들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그럼에도 정유사들은 전쟁으로 초래된 에너지 위기를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울 기회로 삼았다. 반사회적 범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유사들은 또 자영주유소들에 일방적으로 결정한 가격을 통보하고, 석유 전량을 자기 회사에서만 구입하도록 하는 ‘전량구매계약’까지 맺어 기름값 상승을 부추겼다. 대기업인 정유사들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소상공인인 자영주유소들이 더 저렴한 석유 공급 경로를 찾지 못하게 하는 ‘갑질’ 행위다. 정유사들은 기름값 급등으로 정치권과 여론의 비난이 높아지자 지난 4월 뒤늦게 이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유업계는 그동안 기름값을 올릴 때마다 국제유가 변동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인상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수사로 그 핑계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법원은 재판을 통해 담합 가담자들을 엄벌하고, 천문학적인 부당 이득에 상응하는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4대 정유사가 과점하고 있는 국내 석유 유통구조를 개혁해 시장 경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