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노회찬 8주기를 추모하는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발제자는 우파의 극우화, 점증하는 불평등, 진보의 위기를 문제로 지적하며 노회찬이 주장했던 정치의 판갈이와 공공성을 강화시킬 제7공화국 운동, 진보정치의 대중적 확산과 현실적 책임을 화두로 제시했다. 하나하나가 심각한 주제였고,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였다.
진보의 현실주의란?
이념 대립과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지만 그런 문제를 풀어갈 진보정치의 위기가 내게는 가장 절실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양당구조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그 구조를 바꿀 수 없고,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불평등의 완화나 진보정치의 성공을 점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능하고 일 잘하면 찍어주겠다는 유권자의 심리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보다 능력주의를 강화하고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흐를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진다. 개별화된 이익을 넘어서는 공통의 이익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그 방향을 알려줄 진보정치에 대한 갈급함이 생긴다.
지금은 진보정치가 무엇이냐는 원론적인 질문보다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대변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노회찬이 살아 있었다면 그런 질문을 계속 던졌을 것이다. 우파가 좌파정부라고 비난하지만 좌파정책과는 거리가 멀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지금의 정치판에 대한 비판이 좀 더 날카롭게 대중화되지 않았을까.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나라’를 외치며 보편적인 문화권을 주장했던 그의 감수성이 K팝산업의 성장에 가려진 그늘도 좀 드러내지 않았을까. 전쟁의 비극이 K방위산업에 대한 찬사로 가려지는 상황도 점검되지 않았을까. 단순히 과거 정치인을 회고하자는 건 아니고, 그가 대변하려 했던 질문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보의 현실주의란 가치를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하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윤어게인’ 세력이 자신들의 과거와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다면, 이제 진보정치도 과거 성과에 기대지 말고 자신의 가치와 대안을 보편적인 정책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 문제는 그런 투쟁을 위한 진보의 언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진보의 언어를 하나씩 쌓아가야
그동안 진보가 대변해왔던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정의 같은 언어들은 우파도 즐겨 쓰는 말이 되었고, 심지어 극우세력이 국민저항권을 외치기도 한다. 따라서 과거의 언어를 반복하는 것으론 진보의 차이가 드러나기 어렵고, 5·18민주화운동처럼 합의된 것으로 여겨졌던 역사마저 쉽게 부정되면 소모적인 갈등이 용기 있는 문제제기처럼 부각된다.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과잉으로 만들어진 독단에는 설득의 힘이 스며들기도 쉽지 않다. 진보정치의 쇠퇴는 그 언어의 오염이나 쇠퇴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진보정치의 언어를 새로 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허해진 민주주의나 정의 같은 언어들의 내용을 새롭게 채워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주장만으로는 그 내용을 채우기 어렵고, 그것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안들을 여러 사람이 함께 비판하고 토론하며 정리할 때 그 내용이 조금씩 채워질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법치와 권력, 리더십, 경쟁처럼 그동안 잘 다뤄오지 않은 언어들을 진보정치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사회적인 동의를 얻는 과정도 필요하다. ‘토론의 즐거움’이나 ‘말하기 교실’ ‘망원정X’ 같은 모임들이 그런 정립의 공간이 되고 있기에, 그런 모임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 진보정치는 구체적인 사안과 장소를 통해 언어의 힘을 회복하고 그 힘을 전파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심각한 불평등이 불안과 두려움으로, 타자에 대한 배제로 이어지는 세계에서는 공통감각이나 상식을 새로 합의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거악(巨惡)과도 맞서야 하겠지만 그 불평등을 우리 일상의 구체적인 현상에서 찾고 그것을 완화시키는 구체적인 활동과 경험이 축적되면 좋겠다. 우파가 쉽게 접근할 수 없고 진보가 더 잘할 것이라고 사회적인 기대를 여전히 받는 영역은 생명과 안전, 생태이다. 이런 영역에서부터 하나씩 경험을 쌓아갈 때 진보정치에 대한 대중의 기대도 조금씩 회복되지 않을까.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