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종덕리 왕버들
장마철이다. 간단없이 이어지는 장맛비는 둑을 무너뜨리고 들판을 삼키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이즈음 어김없이 떠오르는 나무가 왕버들이다. 물가에 뿌리를 내리는 왕버들은 강물의 범람을 막고, 촘촘하게 뻗는 뿌리로는 강둑의 흙을 지켜낸다.
왕버들의 나뭇가지는 수양버들처럼 늘어지지 않고, 높고 넓게 펼치며 물가에 큰 그늘을 이루어서 개울가 정자나무로 맞춤하다. 습한 물가에서 자라다 보니 줄기 안쪽이 썩어 구멍이 생기기 쉬운데, 그 구멍으로 날벌레와 설치류가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구멍 안에 쌓인 벌레와 설치류의 사체에서 나오는 인(燐) 성분은 푸른 빛을 뿜어내는데, 옛사람들은 이를 도깨비불이라고 하고 왕버들을 ‘도깨비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북 김제시 봉남면 종덕리 개울가에는 크고 오래된 왕버들이 있다.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왕버들은 나이 약 300년, 높이 11m, 가슴높이줄기둘레 8.8m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왕버들을 대표하는 큰 나무다.
아스라이 지평선이 열리는 만경벌 한복판에 홀로 우뚝 선 모습은 실제보다 훨씬 더 웅장해 보인다. 게다가 땅을 기듯 뻗던 굵은 줄기가 허리를 비틀어 하늘로 치솟는 형상은 세월이 빚어낸 거대한 조각품이라 할 만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관장하는 수호신으로 받들었다. 나뭇가지 하나라도 함부로 자르면 동티가 난다고 믿었고, 해마다 삼월삼짇날과 칠월칠석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올렸다. 언제부턴가 당산제는 끊겼지만, 궂은일이 생기면 마을 사람들은 당산제를 지내지 않은 탓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김제 종덕리 왕버들은 단지 오래된 나무가 아니다. 물과 흙, 농사와 인간이 서로 기대어 살아온 이 땅의 역사 그 자체다. 장마가 점점 더 변덕스러울 뿐 아니라, 거칠어지는 이즈음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나무 한 그루의 겉모습만이 아니다. 나무의 뿌리가 붙들어온 물길과 둑, 들녘과 공동체까지 함께 돌아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