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체제의 본질적 속성은 ‘예외성’에 있다.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우리의 시선은 모순된 네 겹의 층위로 얽혀 있다. 우리에게 북한은 정전협정상 교전 상대국이자 헌법상 수복의 대상이며,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인 동시에 남북관계발전법상 교류협력의 동반자다. 남북합의서로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지만, 국제법적으로는 엄연한 별개의 국가다. 하나의 상대를 두고 이토록 이질적인 규정이 중첩된 상태, 이 모호함이야말로 ‘예외상태’가 자라나는 토양이다.
조르조 아감벤이 통찰한 ‘예외상태’, 곧 임시적 비상사태가 상시적 규칙이 되고 법의 안과 밖, 규범과 사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뒤엉키는 상태가 분단이라는 이름으로 70년 넘게 항구화됐다. 상대를 제거와 흡수의 대상이자 특수한 관리 대상으로 설정한 임시 체제가 정상 질서로 굳어진 것이다. 이 예외상태에 기반한 권력은 안보와 동맹, 그리고 ‘주적’ 같은 장치들과 결속해 거대한 정치사회·군사기술 시스템을 이룬다.
북한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는 바로 이 예외상태로부터의 선택적 이탈이자, 김정은식 실용주의의 발현으로 읽어야 한다. 북한은 분단의 예외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국가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남북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의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진 상황에서, 특수관계와 정전체제의 임시성을 지탱하는 데는 막대한 정치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체제 경쟁과 대화의 스트레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의 명분 등 임시성의 비용은 북한에 불리하게 쌓여만 간다. 비핵화 프레임의 원천 차단, 남·북·미 3자 구도의 해체, 한국의 당사자 지위 배제, 나아가 흡수통일 공포로부터의 해방까지 치밀한 체제 생존의 계산이 깔려 있다.
‘적대’라는 수사의 이면에는 서로 섞이지 말자는 단념과 철저한 단절을 통한 안정의 추구가 자리한다. 방벽을 쌓으면서도 정전협정의 물리적 틀은 건드리지 않는 북한의 조치는 정전체제를 사실상의 국경관리체계로 변환하려는 예외상태의 북한식 변형이다. 모호함을 걷어내고 확정된 경계 위에서 억제력을 다지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냉철한 진단과 처방을 당위적 원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몸에서 암세포가 발견되면 전이 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하고 수술이나 항암 등 적합한 치료법을 찾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환자가 ‘나는 암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선언만 되풀이한다면 어떻겠는가. 적대적 두 국가론과 핵 고도화라는 현실의 악화를 진단하고 새로운 접근을 제안하는 목소리를 ‘통일 포기’로 간주하고, 통일·비핵화·대화라는 원칙만 반복하는 낡은 담론이 이와 같다. 암 환자임을 인정하고 생활습관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발병 이전에 가졌던 건강의 ‘원칙’은 지금 당장 어떤 치료를 택할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진단과 처방에 맞는 새로운 국가안보체계를 구축하고, 전략적 저항력과 건강성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가 정작 뼈아프게 성찰해야 할 지점은 우리 안의 예외성 창출 기제다. 과거 국가권력이 독점했던 분단의 활용은 이제 진영 정치와 자본, 개인 미디어가 결합한 ‘혐오 비즈니스’로 진화했다. 국민은 국가의 일방적 선전에 더는 동요하지 않지만, 알고리즘이 빚어낸 가상 공동체 안에서 적대감을 자발적으로 소비하며 이는 즉각 조회수와 수익으로 환전된다. 국가가 독점하던 분단의 기제가 파편화된 진영 정치, 수익을 좇는 1인 미디어, 극단화된 알고리즘 자본의 유착으로 진화한 새로운 하부구조다. 비상계엄에서 목도했듯 군사안보를 명분 삼은 권력의 예외상태 유혹도 여전히 살아 있다. 결국 지금의 국면은 분단체제의 소멸이 아니라, 북한의 탈특수관계 전략과 우리 내부의 파편화된 적대 생산이 맞물려 빚어내는 복잡한 재편 과정이다.
국민 다수는 북한과 충돌하기보다 무관심하더라도 평화롭게 공존하길 원한다. 그러나 진정한 공존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 고도의 정치적인 기획이다. 북한의 변화를 직시하는 냉정한 눈과 더불어, 예외상태를 자양분 삼아 기생해 온 우리 내부의 모순된 분단 위상학부터 뼈아프게 성찰해야 한다. 명분과 당위라는 낡은 처방전을 버리고 변이된 안보 환경 속에서 동북아 평화적 공존을 설계하고, 주도적인 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할 국가적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