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오일뱅크·SK에너지 기소
타사 편승…26조 경쟁 제한 효과
검찰이 유가 담합 혐의로 국내 정유사와 직원들을 재판에 넘긴 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가 기름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정유사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미·이란 전쟁 개전 직후 14조원대 가격 담합을 벌여 유가를 끌어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GS칼텍스, 에쓰오일도 이에 편승해 유가를 올렸으나 담합을 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아 기소를 면했다. 검찰은 이번 담합으로 4대 정유사 간 26조원의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했다고 봤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6일 유가를 담합한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법인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같은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의 가격결정부서 부서장 A씨(구속)와 책임매니저 B씨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지난 3월 미·이란 전쟁 발발 직후 발생한 한국의 유가 폭등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결정부서 책임자들이 가격 인상 시기와 규모를 담합한 결과라고 판단했다. 당시는 4대 정유회사가 상당한 원유를 비축한 상황이라 가격이 폭등할 사유가 없는데도 가격을 크게 올렸다는 것이다.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장 A씨는 지난 3월 전쟁이 발발하자 SK에너지의 가격결정부서장 C씨와 유가를 대폭 올리기로 합의한 혐의를 받는다.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2024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유가 정보를 교환해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담합한 가격을 따라 유가를 올리면서 시장에서 전체적인 유가 폭등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100원 더 올린다, 올해 2조 벌 듯” 사내 메신저 덜미…조직적 증거인멸 정황도
검찰, ‘전량구매계약’ 관행도 적발
4대 정유회사 모두 재판에 넘겨
에쓰오일 직원들은 전쟁 발발 직후 사내 메신저에서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 듯”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만세” 등 대화를 나눴다. 검찰은 4대 정유회사 전체가 담합을 공모했다고 의심했지만,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가담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를 14조2000억원으로 산정했다. 두 회사를 따라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유가를 올린 것까지 종합하면 약 26조원의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가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점도 파악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 법인과 HD현대오일뱅크 법무실장 D씨, GS칼텍스 국내영업부문장 E씨를 공정거래법상 조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D씨는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 현장조사 계획을 미리 알고 다른 정유회사들의 가격 정보를 취합한 자료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다. E씨도 공정위 현장조사에 대비해 가격결정 회의 자료를 공유했던 사내 메신저 단체대화방을 삭제한 혐의가 있다.
검찰은 정유업계의 ‘전량구매계약’ 관행도 수사해 4대 정유회사 법인을 모두 재판에 넘겼다. 한국 정유시장을 과점한 4대 정유회사는 2021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주유소들에 일방적으로 결정한 공급가격을 통보하고, 석유 전량을 자기 회사에서만 구입하도록 계약을 맺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기름값 바가지처럼 공동체의 어려움을 이용해 부당한 폭리를 취하려는 반사회적인 악행에 대해서는 아주 엄정하고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같은 달 4대 정유회사와 한국석유협회를 압수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