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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으악” 반찬통 열 때마다 환호와 탄식···‘랜덤비빔밥’이 증명한 ‘같이의 가치’

입력 2026.07.07 10:21

수정 2026.07.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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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꽃까지 얹어서 완성한 <나 혼자 산다>의 랜덤비빔밥. 해당 프로그램 화면 캡처

식용꽃까지 얹어서 완성한 <나 혼자 산다>의 랜덤비빔밥. 해당 프로그램 화면 캡처

“비빔밥에 그걸 넣는다고?”

최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출연자들이 ‘랜덤비빔밥’ 미션을 수행했다. 각자 어떤 재료를 가져올지 서로 알리지 않은 채 하나씩 준비해와 커다란 양푼에 밥과 함께 비벼 먹는 것이다. 거대한 햄과 참기름, 열무김치, 뜻밖의 재료들이 하나둘 공개될 때마다 출연진은 환호와 탄식을 반복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봉지를 가져온 멤버는 시작부터 모두의 경계를 받았다. 평범한 비빔밥이 흥미진진한 예능이 된 순간이었다.

인스타그램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랜덤비빔밥 관련 콘텐츠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인스타그램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랜덤비빔밥 관련 콘텐츠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랜덤비빔밥 챌린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조용히 퍼져온 놀이 문화다. 규칙은 간단하다. 참가자들이 서로 상의하지 않고 비빔밥 재료를 하나씩 준비해온 뒤 한데 모아 비벼 먹는다. 어떤 재료가 등장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웃음이 터지고, 예상 밖의 조합이 탄생하기도 한다. 실패를 걱정하기보다 ‘무엇을 가져왔을까’를 함께 즐기는 과정 자체가 놀이가 된다.

이 문화가 본격적으로 화제가 된 것은 올봄이다. 온라인에서는 ‘랜덤비빔밥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직장과 학교, 동아리, 가족 모임에서 진행한 영상이 잇따라 올라왔다. 때마침 ‘봄동비빔밥’이 ‘두쫀쿠’를 잇는 유행이 되며 젊은 세대의 주도가 도드라졌다. 참가자들은 “겹치는 재료가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는 소고기 고추장을 만들어 와 영웅이 됐다”, “참기름을 가져온 사람이 MVP였다”는 후기를 남겼다. 인스타그램 릴스와 숏폼 영상에서는 양푼 하나에 각자의 재료가 차례로 쏟아지는 장면이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샤이니의 민호가 아침에 직접 부쳤다는 계란프라이. <나 혼자 산다>  화면 캡처

샤이니의 민호가 아침에 직접 부쳤다는 계란프라이. <나 혼자 산다> 화면 캡처

40대 직장인 이현 씨(가명)도 한 달 전 회사 20대 직원들의 제안으로 처음 랜덤비빔밥을 경험했다. “각자 아무 말 없이 재료 하나씩 가져오자는 거예요. 저는 우삼겹을 넣은 강된장을 만들어 갔는데, 다행히 아무도 가져오지 않았더라고요.”

누군가는 무생채무침을, 누군가는 어묵볶음을, 누군가는 불고기를 준비했다. 가장 큰 환호를 받은 사람은 인원수에 맞춰 계란프라이를 부쳐온 동료였다. 커다란 양푼에 밥을 넣고 모두가 둘러앉아 비벼 먹는 모습도 신선했지만, 이 씨에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평소에는 각자 점심을 먹느라 말도 거의 안 하는데, 그날은 ‘이건 누가 가져왔어요?’, ‘다음엔 뭘 가져오면 좋을까요?’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직장인 이현 씨(가명)의 사무실에서 진행한 랜덤비빔밥 챌린지. 이씨는 강된장을 준비했다. 이현 제공

직장인 이현 씨(가명)의 사무실에서 진행한 랜덤비빔밥 챌린지. 이씨는 강된장을 준비했다. 이현 제공

SNS에서는 이미 ‘인기 재료’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계란프라이는 가장 환영받는 단골 메뉴이고, 참기름과 김가루, 특별한 재료를 더한 고추장도 빠지면 허전한 필수 재료로 꼽힌다. 콩나물과 시금치, 무생채, 애호박볶음 같은 기본 나물은 실패 확률이 적고, 불고기나 제육볶음을 가져온 참가자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반대로 냄새가 강한 음식이나 지나치게 국물이 많은 반찬은 다른 참가자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앤초비’를 준비한 <나 혼자 산다>의 전현무처럼 재미를 위해 기상천외한 재료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연령대에 따라서도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대학생들은 룰렛이나 제비뽑기로 재료를 정하거나 편의점에서 무작위 재료를 사 오는 식으로 게임 요소를 더한다. 20~30대 직장인들은 점심시간 팀빌딩이나 워크숍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 40~50대는 집에서 직접 만든 반찬을 가져와 나누는 데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다. 가족끼리는 냉장고 속 남은 반찬을 활용하는 ‘냉털 비빔밥’ 형태로 즐기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놀이가 한국의 비빔밥 문화와도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비빔밥은 원래 여러 재료를 한데 섞어 먹는 음식이다. 누구의 반찬이 더 중요하지도 않고, 모든 재료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한 끼가 완성된다. 랜덤비빔밥은 여기에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놀이 요소를 더했다. 겹치는 재료가 없이 조화로운 비빔밥이 완성되면 ‘희망 편’, 간혹 꼭 필요한 재료가 빠지거나 겹치는 재료가 많을 땐 ‘절망 편’이라는 이름을 달기도 한다.

랜덤비빔밥의 묘미는 먹는 것외에 함께 비비는 데에 있다. <나 혼자 산다> 화면 캡처

랜덤비빔밥의 묘미는 먹는 것외에 함께 비비는 데에 있다. <나 혼자 산다> 화면 캡처

해외에서도 K푸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빔밥 포트럭(Bibimbap Potluck)’이나 ‘비빔밥 파티(Bibimbap Party)’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각자가 채소나 고기, 나물을 하나씩 준비해 함께 한 그릇을 만드는 방식이다. 다만 국내처럼 숏폼 챌린지로 폭발적인 유행을 탄 사례보다는 모임이나 쿠킹 클래스의 프로그램으로 즐기는 경우가 많다.

랜덤비빔밥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함께 먹는 과정이 대화를 만든다는 점이다. 회사에서는 “누가 이걸 만들었냐”는 질문이 아이스브레이킹의 소재가 되고, 학교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금세 말을 섞게 된다. 한 사람의 반찬이 아니라 모두의 반찬이 모여 한 끼를 완성하는 경험은 자연스럽게 공동체 감각을 회복시킨다. 요즘 랜덤비빔밥 챌린지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련회나 교육기관, 각종 워크숍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혼밥’이 익숙해진 시대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면서도 점심시간에는 이어폰을 끼고 각자의 식당으로 향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그래서일까. 서로 다른 반찬 하나씩을 들고 모여 한 그릇의 비빔밥을 만드는 이 단순한 놀이가 의외의 힘을 발휘한다. 랜덤비빔밥의 진짜 주인공은 계란프라이도, 참기름도 아니다. 함께 둘러앉아 웃으며 숟가락을 드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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