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은 2023년 3월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강호 우루과이와 맞붙었다. 넉 달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을 달성한 데다 위르겐 클린스만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치르는 두번째 평가전이라 팬들의 관심은 집중됐다. 그런데 평가전 휘슬이 울리기 한 시간 전 대한축구협회는 돌연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가담했다 제명된 축구인 100여명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 ‘월드컵 16강 자축’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명분이 따라붙었다. 팬들의 반발이 커지자 축구협회는 결국 사흘 만에 사면을 철회했다. 둥근 공만큼이나 예외 없는 공정성이 ‘축구 드라마’를 풍부하게 하는 핵심이지만, 현실은 때때로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한창 열기를 더하는 2026 북중미 월드컵 무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불공정의 설계자는 개최국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대표팀 골잡이 폴라린 발로건(AS모나코)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치른 32강전에서 퇴장을 당해 강호 벨기에와 맞붙는 16강전 출전이 무산되자 즉각 행동에 나섰다. 이번 대회에서 3골을 넣은 발로건의 결장은 큰 악재였던 만큼 트럼프는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에게 전화해 출전정지 재검토를 요청한 것이다. FIFA는 결국 징계위원회를 열고 출전정지 집행을 1년 유예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격다짐으로 이룬 ‘발로건 사면’은 단순한 ‘홈 어드밴티지’ 수준을 넘어선다.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는 6일(현지시간) 재검토만 요구했다고 발뺌했다. 인판티노도 “FIFA의 사법기구는 독립적”이라며 압박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축구팬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16년부터 FIFA를 이끈 인판티노와 트럼프의 ‘브로맨스’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FIFA 평화상이 트럼프에게 돌아가자 많은 축구팬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발로건은 7일 16강전에 출전했지만 팀이 벨기에에 4-1로 대패하는 것을 막진 못했다. 벨기에가 실력으로 트럼프가 무너트린 ‘월드컵 정의’를 구현한 것이다. 축구팬들로선 그나마 다행이지만 원칙·공정을 허문 ‘트럼프의 월드컵’은 흑역사로 영원히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