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7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에 ‘불운의 날’이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첼시와 벌인 홈경기 전반 6분에 데얀 쿨루세브스키가 선제골을 넣어 기선을 잡았다. 7분 후 손흥민이 넣은 추가 골이 비디오 판독(VAR) 끝에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흐름은 토트넘 쪽이었다.
그러나 전반 27분,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퇴장을 당하면서 판세가 뒤바뀌었다. 로메로는 페널티박스 안에서 공을 걷어내다 상대 선수의 발목을 밟았고, 주심은 VAR 끝에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후반 10분에는 데스티니 우도기까지 태클을 하다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했다. 그런데 9명으로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도, 토트넘은 라인을 내리지 않았다. 수비 선수들까지 모두 중앙선으로 끌어올려 공격적인 전술을 이어갔다. 결과는 1-4로 토트넘의 역전패였다.
‘축알못’(축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임에도 내가 유독 이 경기를 기억하는 것은 우연히 보게 된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인터뷰가 무척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패장’이 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그런 상황에서는 라인을 내려 승점 1점이라도 가져가는 게 맞지 않았냐는 지적에 “결과보다는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하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감독으로 있는 한 우리 팀 선수가 5명뿐이라고 해도 공격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게 우리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심판들은 잦은 VAR로 추가시간만 21분을 잡아먹고 토트넘 선수를 2명이나 퇴장시켰다. 하지만 그는 판정을 탓하지도 않았다. “지난 26년 동안 난 불리한 판정도 받아봤고 유리한 판정도 받아봤다. 어쨌든 판정은 판정이다. 심판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심판의 권위가 지속적으로 약해지면 심판은 어떠한 권한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몇 마일 떨어진 TV 화면으로 시청하는 누군가의 통제에 지배당할 것이다.”
그의 우려는 북중미 월드컵에서 현실이 됐다. 나보다 더 ‘축알못’ 같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대표팀 ‘에이스’ 선수인 폴라린 발로건의 레드카드에 불만을 품고 국제축구연맹(FIFA) 판정에 개입한 것이다. 그는 “과거 기록이 의심스러운 심판이 내린 오심이기 때문에 개입하게 된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그러면서 “경기 중 징계하는 건 몰라도, 아직 치르지 않은 다음 경기까지 못 뛰게 하는 건 불공평하다”며 축구 규정까지 탓했다.
인간이 내리는 판정에 오심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를 번복하지 않는 것은 경기는 판정에 맞춰 계속 진행되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정만 수정하는 것은 또 다른 불공정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심판을 믿지 못하겠다며 너도나도 재심을 요구하다 보면 경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마 이런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늘 동맹을 탓하고, 공산주의를 탓하고, 선거 제도를 탓해온 그가 심판과 축구 규정을 탓하는 것은 너무나도 ‘트럼프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설마하니, 그가 월드컵에까지 ‘미국 우선주의’를 적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