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은 아름답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은 멈춘 듯해서 조금 지루하고, 달리는 자동차에서 보는 풍경은 휙휙 빨리 지나갈뿐더러 그걸 보자고 멈춰 서기도 여의치 않다. 하지만 자전거는 적당하게 흐르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붙잡고 싶은 순간엔 멈춰 서서 땀 닦으며 한참 바라볼 수도 있다. 자전거에서 자유를 느끼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내 발로 움직이는데 걷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고, 언제든 부담 없이 멈출 수도 있으니까.
자전거(自轉車)와 자동차(自動車)에 공통으로 들어간 자(自)는 ‘코’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였는데 ‘자기’를 가리키는 말로 빌려 쓰다 보니 원래 뜻은 비(鼻)에 넘겨주게 되었다. 이후 점차 인위를 가하지 않은 채 ‘저절로’, 혹은 남의 도움 없이 ‘몸소’라는 뜻으로 넓어졌다. 자(自)의 우리말 새김인 ‘스스로’에도 이런 뜻이 다 포함되어 있다. 다만 ‘자기 자신’이라는 명사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자기 결심에 따라서’라는 뜻의 부사로 쓰이는 예가 더 많다. 미세한 차이를 고려하여 구분하자면, 자동차가 내 힘을 들일 것 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차’라는 뜻인 데 비해 자전거는 힘을 들여 ‘자기가 굴리는 수레’라는 의미인 셈이다.
자전거 역시 사람이 지닌 능력을 증폭시키는 기계 장치이지만, 여전히 페달을 밟는 나의 발이 그 동력의 원천이다. 그에 비해 자동차는 연료를 넣고 작동만 하면 나의 힘과 상관없이 자동으로 달린다. 사람의 능력을 대신해서 스스로 움직이는 효율적이고 편리한 기계들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 이제는 신체뿐 아니라 지능까지 기계가 대신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기계에 의한 능력의 증폭은 우리에게 이전에 없던 기쁨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도 필요 없을 정도로 기계가 우리를 완전히 대체해버리는 순간, 그 편안함의 대가로 잃어버리는 것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우리의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인 경우는 차원을 달리한다. 극단의 자동을 추구하는 시대, 끊임없이 스스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효율적인 자동화의 혜택 속에 정작 ‘자기’는 점점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우려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