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잠결에 지도교수님께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석사과정 초기였다. 1교시 수업 공지를 부탁하려 하는데 혹시 행정조교실에 와 있을지 물으셨다. 순간 저도 모르게 “지금 뛰어가고 있습니다” 답했다. 말씀드리면서도 망했군 싶었다. 갓 깨어나 잠긴 목소리로 뛰긴 어딜 뛴단 말인가. 몇초간의 두려운 침묵 후 “괜찮아, 뛰지 마”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불 속에 있음을 모른 척해주신 것이 부끄러워 그날 밤 잠이 안 왔다.
다음 학기 어느 날엔 눈떠보니 오전 10시가 넘었다. 어차피 늦잠 잔 김에 밀린 잔일들을 하자 싶었다. 철 지난 옷을 정리해 동네 세탁소로 향했다. 드르릉, 드라이클리닝 기계음을 등지고 나오던 중 드르릉, 호주머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다섯 글자가 반짝였다. “우리 선생님.” 당황한 난 어딘지 미처 물어보시기 전에 “바람 쐬러 후문에 왔습니다” 둘러댔다. 이번에도 아차, 싶었다. 바람 쐬는 중인데 왜 수화기 너머로 세탁기가 드릉거리는가. 저편에서 또 몇초간 정적이 흘렀다. “응. 이따 들어오면 연구실에 들를래?” 잠깐 후문에 갔다던 그 제자가 연구실에 들르는 데엔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곳에 부임한 첫 학기엔 대학원 세미나실을 개조한 공간을 임시 연구실로 배정받았다. 학장실 건너편 방이었다. 새벽녘까지 논문 작업을 하고서 귀가해 느지막이 출근한 날이면, 학장님이 복도에 나와 계실지 저편에서 엿본 다음 안 계실 때를 틈타 빛의 속도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선 한 시간 전쯤 출근한 시늉을 했다. 학과장 임기 중 이따금 늦잠 잔 날엔 학과사무실에 “우유 사러 매점에 왔는데 곧 들어가서 공문 결재할게요” 메시지를 보내두었다. 그길로 부리나케 머리 감고 대강 말린 후 교정을 가로질러 뛰었다. 맞은편 강의실에서 수업하시는 선배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출근 중이 아니라 잠시 아래층에 다녀온 양 가방을 등 뒤로 쏙 감췄다. 누구도 뭐라 한 적 없는데 혼자 제 발 저렸던 게다.
운동화가 급히 필요했던 오후였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5일가량 소요된다기에 공강 시간에 신시가지의 매장을 찾았다. 발에 꼭 맞는 납작하고 하얀 캔버스화가 한 켤레 남아 있었다. 신발가게 근처 빵집에 들러 마지막 남은 버터 브레첼까지 구매한 나는 신난 채 학교로 복귀하고자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뒤돌아보며 혹시 교수인지 물으셨다. 행선지를 밝힐 때 종종 받아온 질문이었으나 그날따라 마음에 걸렸다. 아직 방학 전인데 선생이란 자가 쇼핑백과 빵 봉투를 품에 안고 방싯거린다는 사실이. 머뭇거리다 꾸며냈다. “제 남편이 거기서 일해서요.”
“급히 갖다줄 게 있어서… 어휴, 성가시죠. 이번만 해주는 거예요.” 대화하며 심장이 마구 방망이질했는데, 거짓말해서인지 아니면 거짓말 속 남편이란 가상의 존재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찰나였으나 짜릿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른바 부캐릭터를 만드는 걸까. 그러다가 보고 말았다. 백미러 속 기사님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음을. 입가에 사탕가루를 묻히고 시침 떼는 아이에게 하듯 그냥 속은 척해주셨던 게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일순간 내 코가 피노키오의 코처럼 길어진 듯했다. 늦잠 잤으면 늦잠 잤다고, 운동화 샀으면 운동화 샀다고 하기. 신뢰를 얻고픈 갈망에 도리어 신뢰를 잃지 않기. 올여름의 지향 중 하나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