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이후 한국 정치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다. 여야의 승패만 갈린 것이 아니라, 정부를 떠받치던 지지층 내부에서도 서로를 향한 불만과 긴장이 빠르게 치솟고 있다. 이 장면은 지금의 정부가 얼마나 느슨한 연합 위에 서 있는지를 새삼 드러낸다. 이런 정부일수록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한국 사회와 경제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있다는 최소한의 신뢰다. 지금 한국 사회·경제 변화의 한복판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거대기업이 있다. 이 기업들은 단지 수출을 많이 하거나 투자를 크게 하는 대표 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환율과 물가의 움직임에도 이전보다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거대한 변수로 떠올랐다.
먼저 환율부터 보자. 한때는 수출이 늘면 달러가 많이 들어오고, 그 결과 원화가 강세를 보인다는 설명이 어느 정도 통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공식이 더 이상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반도체 수출이 크게 늘어도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핵심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예전처럼 곧바로 국내 외환시장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거대기업들은 해외에서 번 달러를 국내로 들여와 원화로 환전하기보다, 해외 계정이나 현지 법인에 두고 인수·합병과 공장 건설, 외화 유보 등에 직접 활용하는 경향이 크다.
수출이 늘어도 국내 시장에 실제로 풀리는 달러가 충분히 늘지 않으면 환율은 내려갈 이유가 없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개인의 해외주식 매수, 기업과 은행의 헤지 수요까지 겹치면 환율은 실물 거래보다 자본 흐름과 기대 심리에 더 크게 흔들린다. 최근 연구들도 무역수지 같은 실물 요인보다 자본 흐름, 글로벌 달러 유동성, 위험 선호 등 금융 채널이 환율 변동을 더 잘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높아진 환율은 결국 물가로 이어진다. 환율이 오르면 에너지와 원자재, 중간재의 수입가격이 뛰고, 그 부담은 제조업 원가를 거쳐 서비스 가격과 생활물가로 번진다. 하지만 최근 물가는 환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의 고액 성과급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법이다. 업계 상위 성과급을 지급하는 사업체 비중이 늘어나면,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05%포인트가량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반대로 ‘평균적인’ 성과급을 주는 기업이 늘어나는 경우에는 물가에 뚜렷한 변화가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 모두가 조금씩 올릴 때보다, 소수 거대기업에 이례적으로 큰 성과급이 집중될 때 물가 상방 압력이 훨씬 강해진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소수 IT 대기업의 고액 성과급이 다른 업종과 회사의 임금·성과급 요구를 자극하는 효과다. “저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기준이 생기면, 내년도 업종별·기업별 임금협상까지 한꺼번에 영향을 받는다. 둘째, 성과급 자체가 소비 여력을 확 늘리는 효과다. 억대 성과급을 손에 쥔 고소득층은 외식, 교육, 각종 서비스 소비를 한꺼번에 늘릴 수 있다. 그러면 “이 정도 가격은 감당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기고, 업체들도 가격을 올리기 훨씬 쉬워진다. 이렇게 임금 기대와 소비 여력이 동시에 부풀어 오르면서, 처음에는 몇몇 대기업 임직원의 성과급으로 시작된 일이 시간이 지나 서민 장바구니 물가까지 건드리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환율·물가 관리는 지금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극우보수의 태도는 더 날카롭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들이 입만 열면 “시장에 맡기라”고 되뇌는 이유는 시장을 잘 알아서가 아니다. 상투적인 정치 구호이다. 시장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없다. 책임지고 만들고 싶은 미래도 없기 때문에, 복잡한 구조를 따라가고 자료를 읽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식을 수정해야 할 순간마다 “시장에 맡기라”는 말만 해댄다. 이런 태도는 시장경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를 잠식하는 일이다. 시장 변화를 읽지 못한 채 똑같은 구호만 반복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시장경제의 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정확히 아는 일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거대기업이 환율과 물가에 어떤 경로로 영향을 미치는지 읽어내는 것, 그것이 지금 정부가 증명해야 할 최소한의 능력이다. 어떤 대책을 내놓더라도, 출발점은 과거의 문법이 아니라 이 변화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여야 한다. 지금 정권이 시험받는 자리도 바로 그 지점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