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연간 1000억달러에서
지난 6월 한 달 1000억달러로
메모리 반도체 덕분에 급증한 수출
“독주 우려보다 고도화에 집중해야”
1995년 10월28일 경향신문 2면. 자료사진
‘수출 1000억불 시대 열렸다.’
1995년 10월28일 경향신문 2면 머리기사다. 기사는 당시 하루평균 수출액을 감안하면 이날 연간 수출 1000억달러 돌파가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1964년 수출 1억달러를 넘어선 지 31년, 1977년 100억달러를 돌파한 지 18년 만이라는 사실도 전했다. 연간 수출 1000억달러를 돌파한 날로부터 약 31년이 지난 올해 6월 한국은 월간 수출 1000억달러를 넘어 1022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한 무역업계 인사는 “감회가 새롭다. 대통령 초청해 기념식 행사하던 게 기억난다”며 “100억달러에서 1000억달러로 늘어나는 것과 1000억달러에서 1조달러가 되는 것도 10배이긴 하지만, 파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훨씬 더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와 경제계에서는 올해 연간 1조달러 달성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 4967억달러를 달성했는데, 일반적으로 상반기보다 하반기 특히 12월에 수출이 늘어나는 것을 고려한다면 무리한 장밋빛 전망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역대 최대 실적은 지난해 기록한 7093억달러인데, 1년 만에 41%가량 늘어나는 것이다. 더구나 올해 추세라면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7일 산업통상부 자료를 보면 올해 1~4월 한국 수출액은 3066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9% 증가했다. 이는 중국(1조3369억달러)·미국(8211억달러)·독일(6312억달러)·네덜란드(3435억달러)에 이은 세계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같은 기간 일본은 2555억달러로 8위였다.
최근 한국 수출액이 급증한 건 반도체 덕분이다. 반도체는 지난해 12월 월간 수출액이 200억달러를 넘어섰고 올해 3월에는 300억달러, 6월에는 400억달러도 돌파했다. 올해 들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세 자릿수 증가율을 유지하며 상반기에만 1924억달러로 집계됐다.
반도체 수출액이 급증하고 있는 건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서버 등 인프라 구축 열풍으로 DDR5 16Gb(기가바이트) 고정가격은 지난달 40달러로 1년 새 685%나 폭등했다. 같은 기간 NAND 128Gb는 28.82달러로 825% 올랐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정점에 다다른다고 해도 가격이 급격히 내려가지 않고 유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가격 상승 추세를 보면 정점으로 보이긴 한다”면서도 “그렇지만 현재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거나 조금씩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6월 실적을 보니 올해 4000억달러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반도체가 4000억달러를 기록하면 1조달러는 꿈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이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커지면서 쏠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전체 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0%대 중후반이다 올해 들어 30%, 5월부터는 40%를 웃돌고 있다. 6월 반도체 외 다른 품목의 수출도 늘어 43.8%를 기록한 것으로 만약 다른 품목 수출이 지난달 수준이었으면 반도체가 절반을 차지할 규모였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직원들이 걸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반도체가 압도적이긴 하지만 고른 품목이 수출 호조를 보여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6월 들어 주요 20개 품목 중 반도체 빼고도 13개 품목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실적이 늘어난 ‘플러스’를 보였고, AI 시대 반도체 중요성이나 비중이 커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주장한다. 김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산업이 힘들어지면 과거 핀란드에서 노키아가 무너졌을 때처럼 국가 경제가 다 어려워지는 거 아니냐는 건 당연한 걱정”이라며 “수출 집중도 분산이 필요한 데는 동의하지만 반도체 비중을 억지로 낮추자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AI 기술이 더 발달할수록 AI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자동차나 로봇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증가하는 만큼 반도체 산업을 어떻게 더 고도화할지를 고민하는 게 생산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메모리 반도체가 소품종 대량 생산하는 품목이었지만, 이제는 설계 단계부터 빅테크와 협의해야 할 정도로 다품종 품목으로 바뀌고 있다”며 “전력 반도체부터 후공정에 이르기까지 공급망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는 반도체에 편중된 걸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독점적 역할을 맡을지,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이동할지 등에 더 집중할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1977년 수출 100억달러 달성을 계기로 국내 산업 구조를 중화학공업 위주로 재편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10조달러 시대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