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억원 들여 공사한 저수지 제방 붕괴
헝저우 홍수 피해 키우고 마을주민 고립
중국 전역 저수지 10만개…홍수 마중물
“댐과 제방 규모 확대보다 거버넌스 필요”
중국 광시성에서 홍수가 발생한 가운데 구조용 트랙터가 7일 구이강시에서 물길을 헤치고 지나가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올해 중국 본토에 상륙한 첫 태풍 ‘마이삭’이 중국 서남부 곳곳에 물폭탄을 뿌리며 막대한 피해를 낳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인 광시좡족자치구 난닝시 헝저우시에서 6일 발생한 류란저수지 제방 붕괴 사고는 특히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800억원 넘는 돈을 들여 제방 공사가 이뤄졌던 사실이 알려지며 ‘치수 정책의 실패 사례’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헝저우시 공식 기록에 따르면 시 당국은 지난 5일 류란·윈뱌오·산차·차위안 등 4개 저수지의 수위가 급상승하자 비상대응 단계를 1단계로 상향하고 방류를 결정했다. 당국은 6일 오전 9시까지 인근 주민들에게 4차례 경보를 내렸으며 오전 10시 저수지 수문을 개방했다. 10시 20분쯤 류란저수지 동쪽 제방이 50m 가량 무너지며 물폭탄이 마을을 덮쳤다.
도로 등이 완전히 침수돼 피난 중이던 저수지 인근 두톈춘 주민들은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됐다. 양청시바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8일 기준 류란저수지의 수위는 낮아지고 침수 지역의 물도 빠졌으나 주민들은 여전히 물, 전기, 통신이 끊긴 채 갇혀 있다. 당국은 드론으로 구호품을 배급하고 있다.
류란저수지 붕괴와 함께 홍수 피해는 절정에 달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광시성에서는 7일까지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됐으며 13만명이 긴급 대피하는 등 총 37만5000명이 피해를 입었다. 간쑤성 룽난시에서도 산사태로 21명이 사망하고 후베이성에서는 황강에서 발생한 토네이도에 휩쓸려 11명이 사망했다.
류란저수지는 1958~1960년 조성된 저수지이다. 흙으로 된 제방 높이는 42m이며 총 저수 용량은 9552만㎥이다. 수력 발전과 농경지 관개, 21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의 식수원 등으로 사용된다.
류란저수지 위치(빨간 네모)와 광시성의 주요 하천. 중국포털 관찰닷컴.
중국신문주간에 따르면 류란저수지는 시설이 노후화되고 제방에 금이 발견되는 등 ‘문제 저수지’로 지목돼 왔다. 당국은 3억8000만위안(약841억원)을 들여 지난해 6월 제방 보강공사를 마무리했다. 공식 보도자료에 따르면 류란저수지는 ‘모범사례’로 탈바꿈해 위험 요소는 제거되고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당국은 공사 결과를 두고 “100년 만의 홍수도 견딜 수 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제방 붕괴 사고로 당국 설명이 무색해졌으며 제대로 공사가 이뤄진 것인지 의혹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홍수 피해가 커진 것은 중국의 수십년 된 치수 정책의 결과가 극단적인 기후 변화와 맞물려 벌어진 일이라고 진단한다. 우선 중국 기상당국은 태풍 마이삭의 진로 예측에 실패했다. 이달 초 베트남 해상에서 발생한 마이삭은 하이난섬에서 우회하는 듯했으나 예상을 깨고 지난 4일 본토로 북상했다.
중국 전역에는 10만개의 크고 작은 저수지와 소규모 운하가 조성돼 있는데, 이 저수지들이 홍수 피해를 키웠다. 평년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리자 발전, 농업용 저수지와 운하에 저장된 물은 더 빠르고 규모가 큰 범람으로 이어졌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은 1950~1960년대 ‘자력갱생’의 구호를 내걸고 대약진 운동을 추진하며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관개 및 발전용 저수지를 만들게 했다. 주민들은 흙과 같은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원료를 사용해 중소규모 댐과 저수지를 대거 만들었다. 명·청대 등 전통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도 확대됐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지방에서도 전력과 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이는 훗날 중국이 도시에 자원을 몰아주며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실하게 만들어진 농촌의 댐과 저수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한 요소가 됐다. 1975년 태풍으로 인해 댐과 저수지가 무너져 수십만 명이 사망한 허난성 반차오 참사가 대표적이다. 반차오 참사 이후 댐과 저수지는 보강공사를 거쳐 더욱 거대해졌고, 평소 더 많은 물을 담게 됐으며, 집중호우 시 방류 피해가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게다가 자력갱생의 원칙에 따라 재해 예방 역시 지방정부가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관행도 유지됐다.
싼샤댐 설계에 참여했으며 현재 독일에서 활동하는 수문학자 왕웨이뤄는 RFI에 “빈차오 참사 이후 당국의 치수 정책은 댐 자체를 보호하는 데 치중돼 있고, 집중호우가 나면 물은 방류하고 있다”며 “양쯔강과 주요 지류에 건설된 수천개의 저수지는 용수 저장, 발전, 관개 측면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재해 예방 기능은 수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홍수의 강도도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중국 과학사를 전공한 이종식 카이스트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방 자체의 자력갱생식 전력 생산이라는 과거 마오쩌둥 시기의 패러다임 아래 지어진 인프라가 오늘날 유례없이 강화된 기후 압력, 기후위기의 예측 불가능한 재난 앞에 놓였다”면서 “이런 국면에서 재해 대책은 댐과 제방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중앙과 지방의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