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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유쾌한 웃음

입력 2026.07.08 19:56

수정 2026.07.0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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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즐겁고 유쾌한 웃음

당신이 웃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라고 하자. 먼저 어디서 웃음을 찾아야 할까? 실험실로 사람들을 부른 다음, <무한도전> <신서유기>와 ‘숏박스’처럼 유명한 코미디 예능이나 유튜브 개그 채널을 틀어주면 웃음을 가득 수집할 수 있지 않을까? 30여년 전 심리학자 로버트 프로바인이 바로 그렇게 했다. 맙소사! 그가 야심 차게 준비한 당대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실험 참여자들로부터 피식거리는 헛웃음만 몇번 끌어내고 말았다.

제인 구달이 진짜 침팬지를 연구하고자 탄자니아 곰베의 정글로 향한 심정으로, 프로바인도 진짜 웃음을 연구하고자 볼티모어 도심의 정글로 향했다. 카페, 쇼핑몰, 학생회관, 공원 벤치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이야기하며 웃음을 나누는 상황 1200개를 소형 녹음기로 몰래 녹음했다. 그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상투적인 믿음과 달리, 실생활에서 폭소를 터뜨리는 대다수 말들은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대부분 웃음은 번뜩이는 유머보다는 남에게 ‘꼽을 주거나’, 초점이 살짝 어긋나거나, 자신을 낮추는 평범한 말로 유발되었다. 예를 들어 “진짜야?” “그게 무슨 말이야?” “얘들아, 다음에 보자” “거봐, 내 말이 맞지” 등이었다. 프로바인이 이끄는 연구팀은 실제 대화에서 웃음을 터뜨린 1200개의 말 가운데 20%만이 그나마 웃기는 유머로 봐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연구팀이 선정한 ‘불멸의 메가 히트작’ 유머조차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이를테면, “너는 안 마셔도 돼. 그냥 술만 사줘” “같은 인간계 사람이랑 사귀는 거지?” “너 방귀 꼈지!” “머리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등이었다.

나중에 직접 살펴보시라. 모임에 참석했을 때, 어떤 말에 사람들의 웃음이 터져 나오는지 주의 깊게 들어보길 바란다. 싱겁기 짝이 없는 말임을 깨닫고 아마 놀랄 것이다. 예를 들면, 유튜브 콘텐츠 <핑계고>에서 방송인 유재석이 옛날에는 체벌이 심했다고 한탄했다. 배우 황정민이 핀잔을 줬다. “우리 때 얘기하지 마. 뭘 우리 때 얘기하고 있어. 재미없게.” 이 말에 전원이 포복절도했다.

지난 칼럼에서 웃음은 아랫사람들이 힘을 합쳐 윗사람의 결점을 만천하에 끄집어내어 우열 순위를 무너뜨리는 전술이라고 했다. 웃음은 마음대로 시작할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 그러니 윗사람에 대한 조롱에 배꼽을 잡는 사람은 ‘저 윗사람이 글러 먹었다’는 전제에 자신이 예전부터 찬성했음을 대놓고 드러내는 셈이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웃음이 이처럼 위계질서를 허무는 무기가 되지만, 꼭 남을 파멸시키는 용도로만 쓰이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친한 친구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관계를 생각해보자. 친구끼리는 위아래가 따로 없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곁에 있어준다. 문제는,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도 둘 중 어느 하나가 외모, 재산, 학벌, 직장 등의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더 낫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누구도 맘 편한 우정이 엄격한 서열로 변하는 비극을 원치 않는다. 나는 너를 밟고 올라설 생각이 없고, 네가 나를 밟고 올라서기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서로 입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쾌한 놀림과 자기 비하가 답이다. 내가 머리가 부스스한 친구에게 “머리에 무슨 짓을 한 거야?”라고 웃으면서 면박을 준다면, 그리고 수모를 당한 친구가 내 말에 반응하며 멋쩍게 웃었다면, 나와 그 친구는 우리 사이가 평등한 친구 관계이며 위아래 따위는 없다는 ‘공통 지식’을 각자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웃음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일부러 또는 실수로 자기를 낮추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전교 1등인 친구가 다른 친구가 한창 이야기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뜬금없이 내지른다면, 모두 일제히 폭소를 터뜨림으로써 구성원 간의 관계가 성적에 따라 위와 아래로 나누어진 우열 관계가 아님을 온 세상에 공표한다. “저 인간 1등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 같은 추임새를 곁들이면서 말이다.

요컨대, 핑커에 따르면 웃음은 우열 순위를 무너뜨리는 ‘공통 지식’을 생성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 윗사람에게 일제히 돌을 던져 파멸시키려는 뾰족한 용도로도 쓰이고, 우리끼리는 위아래가 없는 평등한 관계임을 다 같이 확인하려는 유쾌한 용도로도 웃음이 쓰인다. 대중을 웃기고자 머리를 싸매는 희극인, 작가, PD, 유튜버들이 웃음이 어떤 진화적 기능을 수행하게끔 ‘설계’되었는지 과학적으로 이해한다면 웃음 폭탄을 제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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