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연일 요동친다. 하루는 기뻐할 새도 없이 오르다가 어떤 날은 속절없이 곤두박질친다.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은 개미들은 실시간 일희일비한다. ‘영끌’ ‘빚투’ 같은 말들이 부동산과 주식 사이를 오가며 열일한다. 그런 와중에 주식의 ‘주’ 자도 모르면서 욕심은 많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대책이다. 주식 관련한 일이 업(業)인 사람들도 (무대책은 아니리라 믿으면서) 연일 널을 뛰는 시장 탓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 잎새’로 유명한 미국 작가 오 헨리는 수많은 단편을 통해 19세기 말 20세기 초 대도시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포착해냈다. 그중 ‘바쁜 주식 중개인의 로맨스’는 바쁜 현대인의 애환을 그려내면서도 작가 특유의 반전이 잘 묻어나는 작품이다. 하비 맥스웰은 뉴욕 증권가에서 꽤 잘나가는 주식 중개인이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주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살아야 했고, 간간이 나오는 시세표에 집중해야만 일이 돌아갔다.
어느 날 아침, 맥스웰은 속기사 레슬리와 함께 출근했다. 레슬리는 눈이 부드럽게 빛나고 볼은 홍조를 띤, 한껏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비서 피처가 보기에 그날 아침은 더 은은한 아름다움을 내비쳤다. 맥스웰은 역시나 출근과 동시에 바빴다. 흥분과 화, 기쁨 등등을 동시에 표출하는 투자자들이 들락거렸고, 사환들은 편지와 전보를 움켜쥐고 이리저리 뛰었다. 맥스웰은 전화를 받다가도 쓰레기통을 뒤졌는데, 걷어붙인 팔에서는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점심시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열린 창문 사이로 향기가 들어오는 듯했다. 살펴보니 그 향기의 주인공은 속기사 레슬리였다. 맥스웰은 잠깐의 여유시간에 이런 생각을 했다. ‘그에게 가서 지금 청혼해야겠어.’
“한국형 좀비물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 <부산행>의 주인공 석우(공유)는 유능하고 냉철한 펀드매니저다. 하지만 ‘개미들의 고혈을 짜내는 흡혈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기 이익만 좇는 인물. 영화 초반, 작전 세력을 관리하고 부실기업의 주가를 방어하는 석우의 모습을 슬쩍 보여준다. 끝까지 좀비들에 맞서면서 딸 수안(김수안)과 여러 사람을 지켰던 석우가 막판 좀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루어 짐작건대, 이 사태를 일으킨 바이오 기업을 제 손으로 살렸다는 죄책감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천국은 어린아이 같은 자들의 것’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상기해보자면, ‘부산’이라는 청정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수안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성경(정유미)뿐이어야 한다. 돈이라는 욕망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부산(천국)에 갈 수 없다.
맥스웰은 레슬리에게 말했다. “저와 결혼해주시겠습니까? 제 아내가 되어주시겠습니까?” 당황한 나머지 맥스웰을 위아래로 훑던 레슬리의 대답은 이렇다. “기억 안 나? 우리는 어젯밤 8시 길가 모퉁이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어!” 맥스웰은 석우처럼 돈이라는 욕망에 영혼을 판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바빴고, 건망증이 심했을 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바쁨과 건망증 역시 ‘돈’이라는 욕망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삶의 참된 가치 중 하나인 사랑마저도 잊게 했으니 말이다. 헛된 욕망은 크건 작건 삶을 망치는 건 매한가지다. 부동산과 주식은 이제 시대정신으로까지 떠올랐다. 그럼에도 부동산과 주식에 영끌, 빚투했다는 소식이 사라진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잠시 어설픈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