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테이는 ‘고가의 실버타운과 저소득층용 고령자복지주택 사이 사각지대에 있는 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정책자료와 기사를 읽다 보면 몇호를 공급할지, 어떤 시설을 갖출지에 대한 설명은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노인은 어떤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실버스테이 정책은 중요한 질문 하나를 놓치고 있다.
노인들은 정말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가기를 원할까?
내가 만난 많은 노인들의 대답은 달랐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최신 시설을 갖춘 낯선 건물이 아니었다. 매일 다니던 시장, 단골 병원, 오래 알고 지낸 이웃, 익숙한 골목길을 떠나지 않는 삶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친근한 관계에 의지한다. 그래서 노후 주거의 핵심은 집이 아니라 동네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실버스테이가 아니라 동네스테이다.
동네스테이는 특정한 건물의 이름이 아니다. 노인을 기존의 삶에서 떼어내 한곳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살던 지역 안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돌봄친화 주거 대안이다. 대규모 노인주택단지가 아니라 동네 곳곳의 작은 공동체주택, 노인만 모여 사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그곳에서 노인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주민이다. 도움받는 사람이자 이웃을 돕는 사람이며, 서비스를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민이다.
지금까지의 노인 정책은 대부분 ‘보호’를 전제로 했다. 위험하니 돌봐야 하고, 약하니 관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오늘의 노인들은 다르다. 통제된 환경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기보다 끝까지 자기답게 살기를 원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기보다 지역사회 안에서 역할을 갖고 기여하기를 바란다. 노후의 존엄은 좋은 시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 이웃과 일상을 나누며 사는 삶에서 만들어진다.
동네스테이는 바로 그 가능성을 담고 있다.
아침이면 동네 카페에서 이웃을 만나고, 점심에는 마을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일상을 나눈다. 몸이 불편할 때는 필요한 돌봄을 연결받는다. 시설 안에서 소비하는 돌봄서비스가 아니라, 마을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돌본다.
초고령사회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노인 인구의 증가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관계의 붕괴다. 1인 가구는 늘어나고 가족은 멀어지고, 이웃과의 연결도 약해지고 있다. 외로움과 고립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되었다.
고독사를 막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이웃이고, 돌봄 공백을 메우는 것은 시설이 아니라 관계다. 이제 정책도 공급의 논리에서 삶의 논리로 이동해야 한다. 얼마나 많이 지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실버스테이가 ‘노인을 위한 집’을 짓는 것이라면, 동네스테이는 ‘노후를 품는 동네’를 만드는 일이다. 실버스테이가 건물을 중심에 둔다면 동네스테이는 사람을 중심에 둔다. 실버스테이가 주택 정책이라면 동네스테이는 주거와 돌봄, 관계와 공동체를 만드는 지역사회 정책이다. 초고령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인주택이 아니라, 더 많은 이웃이다.
최고의 복지는 이웃이다.
김수동 돌봄주거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