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곳에서 오래 살다가 바로 옆에서 경희궁이 복원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경희궁은 우리 골목과 붙어 있고, 궁과 맞대다시피 있는 집 사람들은 쪽문을 이용해 경희궁 뒤뜰로 바로 나간다(그러나 이제는 나도 오래도록 재개발 열풍 속에 있는 한 뼘 거리의 이웃들 사정을 예전처럼 알지 못한다).
마치 구멍 같은 그 쪽문으로 나가면 서울역사박물관 쪽으로 빙 둘러가지 않고 바로 덕수궁이 있는 정동길로 접어들 수 있다. 엄청 지름길이다. 이웃들의 간곡한 권유(?)로 나도 한때 그 쪽문을 이따금 이용하곤 했다. 그럴 때면 그곳이 서민들의 절묘한 숨구멍처럼 느껴져서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다.
골목 가장 으슥한 곳에는 사람들이 ‘비밀의 정원이 있는 집’이라 부르던 집도 있다. 경희궁 뒷마당이 널찍하게 들어앉아 있지만 마치 사유지 같아 보이던 그곳에는 갈 때마다 애기똥풀꽃이 무성했다. 넓고 평평하고 고요해 왠지 비밀이 묻혀 있을 것만 같던 그 집 주인은 주연급 연예인이 되어도 빠지지 않을 출중한 미모의 여인이었다. 그이가 혼자 자식을 키우며 계속 증축하면서 살던 집을 상속하자마자 양로원행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지 서너 달쯤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그이가 기다시피 우리 골목에 나타났다. 붓고 지쳐 보이는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득했고, 놀란 나를 바라보는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이는 그날 다시 양로원으로 돌아가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격한 노여움은 분노의 대상이 아닌 그 자신을 가장 먼저 함몰시켰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살다보니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집들의 역사도 많이 알게 된다. 평범한 주택가에 근대건축문화유산들이 있다는 것도, 경희궁의 어딘가에 닿아 있는 맑은 물길이 윗 골목 어느 집 뒤뜰 바위 아래에 넓고 깊은 연못처럼 고여 있다는 것도.
재개발 지역 끝자락에 있는 선교사의집이라 불리는 곳 담장에 뚫린 구멍도 내겐 경이롭다. 두 동인 선교사의집 중 한 동이 근대건축문화유산이고, 서울시는 근대건축문화유산인 그 건물에다 언제든 철거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건축의 귀재라는 사람이 다시 시정을 맡았고, 내 시선은 철거 위기에 놓인 건물만큼이나 담장에 뚫린 작은 구멍에도 자주 머문다.
그 구멍을 눈여겨본 지 이십여년 만에 우연히 정확한 용도를 알게 되었다. 담장에 절묘하게 뚫린 그 작은 구멍은, 그 뜰에서 사는 고양이들을 위한 것이다. 오래전, 선교사들은 그들의 뜰에서 살던 고양이들이 안전하게 드나들며 동네 사람들에게 먹이를 얻어 연명할 수 있도록 담장에 구멍 하나를 내놓고 떠났다. 구멍 뒤에는 시멘트를 개어 작은 통로를 만들어 붙였다. 작고 초라한 건축물인 셈이다.
골목에 면한 그 구멍을 드나들며 여러 대를 이어온 고양이들은 잠시 쉴 수도 있고, 눈비를 피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밀어 넣어주는 먹이를 먹고 생명을 이어갈 수도 있다. 밋밋한 시멘트 구조물에서 느끼는 측은지심이 있는 인간의 온기는 재개발 열풍에 냉소적이 된 사람의 피를 데운다. 지구의 모든 생명과 생태계까지 아우르는 자연법이 있는 나라들까지 상기시키면서.
조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