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선 여부 등 성역 없이 밝혀라” 유가족과 시민단체 등이 구성한 ‘고 이채원 학생 추모모임’ 관계자들이 8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광주경찰청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귀한 기자
검 “첨단대교 밑이냐” 통화 녹취 확보…휴대전화 폐기 여부 조사
광산서 수사팀장 구속…경찰, ‘조직적 누락·은폐 시도’ 규명 총력
이채원양 유족 “경찰 자격 있나…관련자 모두 엄중 처벌을” 호소
지난 5월 전남광주통합시에서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의 아버지 장모 경감이 경찰 수사 책임자에게 장씨가 휴대전화를 버린 위치를 물어 확인받은 것으로 8일 파악됐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정보 누설로 핵심 증거인 휴대전화가 인멸됐는지 수사하고 있다.
광주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봉진 형사1부장)은 지난 5월8일 오후 3시쯤 장 경감이 광주광산경찰서 강력팀장 박모 경감에게 “장윤기가 휴대전화를 버린 장소가 영산강 첨단대교 밑이냐”고 묻는 통화 녹취를 확보했다. 장 경감은 박 경감과 장씨 차량에 관해 대화하다 돌연 이렇게 질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 경감은 이어 “장윤기를 바꿔달라”고 요구한 뒤 장씨에게 “첨단대교가 맞냐”고 물었고 장씨는 “거기 맞다”고 대답했다.
당시 장씨는 이채원양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구속된 상태였지만 경찰 수사팀은 장 경감과 여러 차례 통화를 연결해줬다. 경찰은 이런 통화들이 휴대전화를 버린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 장씨를 설득하기 위해 아버지를 이용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검찰은 장 경감이 박 경감과 통화한 뒤 첨단대교로 가서 장씨의 휴대전화를 수거해 폐기했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장 경감은 지난 5월 검찰 보완수사 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으며 “그때 첨단대교에 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장씨가 평소 사용했던 휴대전화는 핵심 증거로 꼽히지만 행방이 파악되지 않았다. 장씨가 범행 당일인 지난 5월5일 오전 경찰에 긴급체포될 때 압수당한 휴대전화는 과거에 사용한 공기계였다. 경찰은 영산강을 수중 수색했지만 휴대전화를 발견하지 못했다.
검찰은 경찰이 장씨의 차량에서 발견한 ‘케이블타이’ 등 핵심 증거를 누락하고 수사정보를 장 경감에게 알려주는 과정에 경찰 윗선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의심한다. 케이블타이는 이날 뒤늦게 장 경감의 집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진상규명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7일 장윤기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박 경감을 직위해제하고 광산경찰서장과 형사과장, 수사팀 소속 수사관 4명 등 6명을 대기발령한 데 이어 이날 박 경감을 구속했다. 광주지법 최윤영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증거인멸 혐의를 받는 박 경감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한 뒤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 등 구속 필요성을 인정했다.
경찰은 수사팀 차원의 조직적 누락·은폐 시도가 있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광산경찰서 살인사건 관련 진상규명 특별수사팀은 이날 장 경감을 불러 장씨 집에 있던 리얼돌을 폐기한 경위와 광산경찰서 수사팀과 여러 차례 통화한 이유 등을 조사했다.
과거 일부 경찰관의 수사정보 유출이 문제가 된 적은 있지만, 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가족인 경찰 간부와 수사팀이 조직적 은폐 의혹을 받은 사례는 드물다. 경찰청 관계자는 “검찰은 검찰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경찰은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경찰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유족과 시민단체가 꾸린 ‘이채원 학생 추모모임’은 이날 전남광주통합시 광산구 광주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엄정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양의 어머니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뒤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며 “경찰이라는 직분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어 “자식 잃은 부모의 마지막 호소”라며 “수사와 재판을 통해 모든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관련자 모두에게 엄중한 책임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김미리내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공권력은 권력을 가진 사람 편이 아니라 시민의 손이어야 한다”고 했다.
추모모임은 “‘경찰 가족 범죄’라는 조직 치부를 감추기 위해 윗선이 개입하고 방조한 제 식구 감싸기식 은폐수사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경찰은 범죄를 엄단하는 수사관이 아니라 가해자와 한 몸이 되어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한 공범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증거 은폐 관련 경찰에 대한 구속 수사와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광주경찰청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