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가 “사실상 끝났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이 보복 공방을 벌이며 양국 간 군사 충돌이 다시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CNN 방송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그들과 상대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미국의 이란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바레인과 쿠웨이트의 미군기지를 공격했다고 발표한 직후 나온 것이다. 이번 사태로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 다시 커졌고, 미국과 이란 간 취약한 종전 MOU 체제가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향해 “그들과 거래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지긋지긋한 사람들”이라며 협상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내 훌륭한 협상팀이 계속 대화를 이어가도록 허용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두면서도 “그들과 상대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란이 휴전 합의를 위반했다면서 “지저분한 플레이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어 “우리는 그들의 암을 제거해야 한다. 암은 초기에 도려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에 앞서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상선 피격을 문제 삼아 이란산 원유 판매 허가를 철회한 데 이어 이란 남부 곳곳을 폭격했다. 이란은 쿠웨이트·바레인 내 미군시설에 맞불 공격을 가했다.
미 “상선 공격 대가 치를 것”…이란과 ‘보복전’ 재개
이란 측 ‘지정 항로’ 벗어난 상선 3척 피격
4월 말 이후 최대 규모 미, 원유 판매 막고 80여곳 폭격
이란, 중동 미군 기지 맞불 타격
미 중부사령부는 7일(현지시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3척의 상선을 공격한 것에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이란의 방공시스템과 지휘통제망, 레이더기지 등 80여개의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란 국영언론도 케슘섬과 반다르아바스, 시리크 지역에서 여러 차례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6일 밤과 7일 오전 사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라이베리아 국적 상선 3척이 발사체의 공격을 받았다. 이는 4월 말 이후 하루 동안 발생한 공격 중 가장 많은 수다. 피격당한 상선 한 척에 화재가 발생했고, 나머지 두 척은 약간의 손상을 입었지만 항해를 계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은 세 건의 공격 모두 오만만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해안 근처에서 발생한 것으로 미뤄볼 때, 이 선박들이 이란이 지정한 항로가 아닌 다른 항로를 이용하다가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이란의 소행이라고 시인하지 않았지만 “상선들이 협의되지 않은 항로를 이용하는 것은 스스로 위험을 초래할 뿐 아니라 안전한 통항을 보장하려는 이란의 노력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군사작전 재개와 함께 이란 돈줄 죄기에 나섰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상선 피격 발생 몇시간 후 이란산 원유의 생산·인도·판매 허용을 위해 지난달 21일자로 발급했던 60일짜리 임시 일반면허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날부터 이란산 원유의 신규 구매는 다시 금지됐다.
다만 이미 승인된 거래는 오는 17일 0시1분까지 유예 기간을 두되, 거래 대금은 미국에 소재한 동결계좌로 지급하도록 했다. 미 정부 당국자는 “이란과의 합의는 전적으로 성과 기반이며 이란이 모범적 행동을 보일 때만 (제재 완화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을 공격한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으며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MOU 시행의 전제조건으로 원유 수출 재개 및 동결자금 해제 등 경제적 보상을 요구해온 이란은 반발했다. 이란 외교부는 미국의 이란 공습과 제재 면제 철회는 MOU를 위반한 조치라면서 “이란은 국가의 이익과 안보를 수호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는 바레인·쿠웨이트 내 미군 시설 85곳을 무인기(드론)와 미사일로 타격했다. 혁명수비대는 “미국의 MOU 위반에 대한 ‘초기 대응’”이라고 밝혀 추가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미국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를 추모하기 위한 “역사적인 행사를 방해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MOU 체결 후 회복되던 에너지 수송이 다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다국적 기구인 공동해양정보센터(JMIC)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 기준을 기존 ‘상당함’에서 ‘심각함’으로 올렸다.
미국과 이란은 두 차례 후속 회담 후 하메네이 장례식으로 인해 협상을 중단한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사태는 종전 MOU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