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강윤중 기자
소득·자산 불평등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한국의 자산 불평등 해소 방안에 대해 “청년들에게 ‘보편자산’(universal capital endowment)을 제공하는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며 “자본이득(capital gains)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케티 교수는 지난달 22일 경향신문과 진행한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편자산이란 자산 불평등 해소를 위해 사회 생활의 출발선에 선 청년들에게 자산 증식에 필요한 기초자산을 주자는 구상이다. 그는 유럽에서 만 25세 청년에게 성인 평균 자산의 60%에 해당하는 12만 유로(약 1억6000만 원)를 기초 자산으로 주자는 주장을 해왔다. 자본이득 과세(capital gains)는 한국에서 2024년 유예를 거듭한 끝에 폐지한 금융투자소득세가 대표적이다.
피케티 교수는 다만 이런 정책도 “기술적인 차원의 정책일 뿐”이라며 “부와 권력의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근본적이고 야심찬 구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가 운영하는 세계불평등연구소(WIL)가 지난달 초 내놓은 ‘세계정의보고서’(Global Justice Report)에 담은 ‘구상’을 소개했다.
그는 세계 모든 국가가 2100년까지 번영을 달성하면서도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2℃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세계정의기금이 지원하는 대규모 기후 투자, 저탄소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 노동시간 단축, 교육·보건 영역 투입 확대, 육류 소비를 줄이는 식생활 변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세계정의기금은 상위 1% 부자들에게 걷는 세금을 기반으로 한다. 세계적 차원의 부유세와 누진적 소득세를 통해 2026년부터 2060년까지 매년 세계 GDP의 10.3% 규모의 재원을 조달해 재분배에 사용하자는 계획이다. 세계정의기금의 의결권은 얼마를 냈는지가 아니라 각국 인구 규모에 비례해 배분된다.
그는 이를 통해 2100년엔 세계의 부의 격차를 10 대1 수준으로 낮추고,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약 1.8℃로 제한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전 세계 하위 50%가 보유한 부의 비중이 지금의 2%에서 30%로 늘어나고, 억만장자 계층의 비중은 6%에서 0.05%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피케티 교수는 너무 급진적이라는 지적을 의식한 듯 북유럽에서 1910년 상위 0.1%의 소득이 하위 10%의 150배에 달했다가 20세기 말에 11배로 줄어든 예를 들었다. 그는 “북유럽 국가들은 1980년대 이후 시간당 GDP로 측정한 노동 생산성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미국보다 높다”며 “21세기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 이와 같다”고 말했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지난달 초 내놓은 ‘세계정의보고서’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 캡처. 세계불평등연구소(WIL) 홈페이지
다음은 피케티 교수와의 일문일답으로 피케티 교수의 요청으로 전문을 그대로 싣는다.
- 한국은 자산 불평등이 심하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이 세대 간 격차를 키우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정책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부와 권력을 재분배하는 것이 우선이다. 청년들에게 보편자산(universal capital endowment)을 제공하는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함께 자본이득(capital gains)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보다 기술적인 차원의 정책일 뿐이며, 부와 권력의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보다 근본적이고 야심 찬 구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자산은 자산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피케티가 주장해 온 주요한 아이디어다. 그는 유럽에서 만 25세 청년에게 성인 평균 자산의 60%에 해당하는 12만유로(약 1억6000만원)을 기초자산으로 주자는 주장을 해왔다. 한국에선 정의당이 2020년 총선에서 만 20세 청년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자고 청년사회상속제를 공약했다.
- 세계정의보고서에는 어떤 구상이 담겼나.
“세계정의 보고서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하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2100년까지 번영을 달성하면서도 동시에 지구의 거주 가능성을 유지하고,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2℃ 이하로 제한할 수 있을까?’
보고서는 매우 엄격한 조건 아래에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린다. 우선 모든 국가는 저탄소 에너지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정의 기금(Global Justice Fund)이 지원하는 대규모 기후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발전 경로는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감소가 필요하다. 특히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총생산 규모와 물질 소비를 줄이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동시에 경제 구조 역시 물질 집약적 산업에서 비물질적 서비스 부문으로 크게 전환되어야 한다. 보고서는 2100년까지 모든 국가에서 전체 노동시간의 43%가 교육과 보건 부문에 투입되는 사회를 전망한다.
식생활 변화도 중요하다. 육류 소비를 줄이고 토지 이용 방식을 바꿈으로써 산림 면적을 점진적으로 1900년 수준까지 회복해야 한다. 교육과 보건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동시에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국가 간 발전 격차를 줄이는 데도 이바지한다. 무엇보다 다른 산업에 비해 훨씬 적은 물질과 자원을 소비한다는 장점이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대담한 경제 구조 전환을 ‘충분성‘(sufficiency·어떤 목적을 충족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는 상태)’이라고 부른다. 보고서에 따르면 빠른 탈탄소화, 충분성 전략, 그리고 불평등의 대폭 축소를 결합할 경우 2100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약 1.8도로 제한할 수 있다. 반면 현재의 경제 및 정책 추세가 지속할 경우 기온 상승은 4도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하위 50%가 보유한 부의 비중은 현재 2%에서 30%까지 증가하고, 억만장자 계층이 보유한 부의 비중은 6%에서 0.05% 수준으로 감소한다. 또한 세계 인구의 약 90%는 현재보다 두 배 높은 소득을 얻으면서도 노동시간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세계정의보고서에 들어간 그래픽 중 하나. 세계 지역별로 현재 월소득 격차가 큰지와 보고서가 2100년 목표로 둔 소득수준이 표시돼 있다.
-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빈곤국과 부유국 사이에 지속 가능한 융합점(convergence)을 찾기 위해 기후 인프라, 교육, 보건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북반구와 남반구를 막론하고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실질 소득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 가능한 발전 경로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특히 북반구의 억만장자와 초고액 자산가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경제 성장의 혜택을 불균형적으로 누려 왔다. 또한 이들은 산업혁명 이후 누적된 온실가스 배출, 특히 전체 누적 배출량의 70% 이상이 발생한 1970~2025년 기간에 대해 중대한 역사적 책임을 안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온실가스 배출이 없었다면 현재와 같은 부를 축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구 온난화를 초래한 세계 경제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었다.
반면 그 결과로 발생한 환경적 피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의 주민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혹하게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소득과 부의 재분배에 있어 북반구의 억만장자들이 가장 큰 기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충분히 정당하다. 이는 이미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고, 세계적 차원의 사회경제적 수렴과 지구의 거주 가능성(habitability)을 동시에 지키기 위해서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미래 비전은 국가 간 소득 격차를 최대 5대 1 수준으로, 부의 격차를 최대 10대 1 수준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일견 매우 급진적인 목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오늘날의 선진국들이 실제로 경험한 장기적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북유럽에서는 1910년 당시 상위 0.1%의 소득이 하위 10% 소득의 150배에 달했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면서 이 격차는 11배 수준까지 줄었다. 만약 1910년 당시 유럽의 엘리트들에게 이런 변화를 예고했다면, 그들은 경제 붕괴와 혁신의 종말, 성장의 정체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생산성 향상과 가장 큰 번영의 시기가 이어졌다. 북유럽 국가들은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시간당 GDP로 측정한 생산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 왔으며, 이는 미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21세기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 이와 같다.
물론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는 최선의 증거에 기초해, 명확하고 수치화된 계획을 제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연간 노동시간은 19세기 약 3000시간 수준에서 오늘날 세계 평균 2100시간, 유럽은 1500시간 수준까지 감소했다.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은 장기적으로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미래의 노동시간 감소 전망 역시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유명한 글에서 자신의 손자 세대가 주당 10시간도 채 일하지 않게 되리라 예측했다. 다소 과장된 전망이었을 수는 있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역사의 큰 방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고 물질 소비를 줄여야 하는 21세기에는 이러한 흐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전망이 과거의 경험과 부합한다고 해서 그것이 쉽게 실현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은 강력한 사회적 동원, 노동운동, 그리고 입법적 개혁을 통해 이루어졌다. 앞으로도 비슷한 노력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오늘날에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할 이유가 과거보다 더 늘어났다. 첫째는 물질 소비와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성평등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경제활동과 가사노동 모두에서 완전한 성평등을 달성하기 어렵다. 또한 인구 감소라는 실존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 세계는 보호무역주의와 경제적 민족주의가 다시 확산된다. 미국과 중국 간 대립도 심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고서의 구상이 추진할 수 있을까.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민족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환경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세계를 기후 재앙으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는 우리는 집단적으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대안적인 발전 모델과 새로운 사회 구상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적 정의와 기후 정의를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는 21세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강해질 것이다. 특히 남반구(Global South)에서 그러한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2013년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글로벌 부유세(global wealth tax)를 제안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0년 뒤,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국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이 의제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의 공식 논의 안건이 됐다. 앞으로 인도와 다른 주요 남반구 국가들까지 동참한다면 북반구의 부유한 국가들이 그 압력을 계속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제 금융기구 개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국제 질서는 사실상 금권정치(plutocratic)의 원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유럽과 북미·오세아니아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세계 인구 비중보다 약 4배 많은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인구 비중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의결권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시급히 ‘1인 1표’라는 민주적 원칙에 기반한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닥칠 기후 재앙과 남반구로부터의 정치적 압력은 오늘날의 부유한 국가들로 하여금 이러한 변화를 더 회피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