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성동훈 기자
지역의 한 언론사 회장 A씨는 채용 면접 과정에서 지원자 B씨에게 부적절한 성적 발언을 하고 사적인 술자리 요구를 거절당하자 합격을 번복했다. A씨는 전화 면접에서 B씨에게 결혼 계획을 묻거나 “슬림한 복장으로 오라”고 요구하고, 대면 면접에서는 손을 잡고 몸을 밀착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직위를 이용해 취업준비생에게 고용상 불이익을 준 성희롱으로 판단하고 A씨에 대해 손해배상금 200만원 지급과 특별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했다.
과장급 공무원 C씨는 부하 직원 D씨에게 사적인 성 경험을 묻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반복했다. 자신의 방에 물을 갖다 놓으라는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다른 직원들 앞에서 타 부서 전보를 언급하며 공개 질책했다. 인권위는 각각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기 충분한 성희롱”이자 “인격권 훼손”이라며 C씨에 대한 징계를 해당 기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러한 사례들을 담은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 제12집>을 발간했다고 9일 밝혔다. 2014년 1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인권위가 시정 권고한 성희롱 사례 20건이 수록됐다. 인권위는 개별 성희롱 진정 사건의 경우 2차 피해 예방 등을 위해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않고 2년마다 사례집으로 공개한다.
인권위에 따르면 성희롱 진정 접수 건수는 2005년부터 꾸준히 늘어 지난해 350건을 기록했다. 전년(149건)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었다. 인권위가 출범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진정을 인용해 권고한 사건만 보면, 성희롱 발생 장소 비중은 ‘사업장 내’가 48.8%로 가장 컸고 ‘회식 장소’(22.4%) 등이 뒤를 이었다.
성희롱 피해자 직위는 ‘평직원’이 78.1%로 최다였고 ‘중간 관리자’(5.0%) 등 순이었다. ‘직접 고용 등 상하 관계’(70.2%)에서 성희롱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성희롱 양상은 신체 접촉이 포함된 경우(52.7%)가 언어적 성희롱(42%)보다 많았다.
인권위는 최근 접수된 성희롱 진정 사건들의 특징으로 ‘2차 피해’를 꼽았다. 인권위는 “성희롱 피해에 더해 성희롱 사건의 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등 ‘2차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그러면서 “성희롱은 직장 내 위계질서 또는 권력의 불균형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의 문제”라며 “피해자의 노동권 보장에 방점이 있음을 감안하면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2차 피해를 예방하는 적극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성희롱 사례집과 별도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의 주요 성차별 진정 사건을 심층 분석한 <성차별 진정 사건 결정례 평석집>도 발간했다. 평석집은 ‘방송국 여성 아나운서 고용 차별’ ‘육아휴직을 이유로 한 승진 차별’ 사건 등을 분석했다. 사례집과 평석집은 인권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