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정상회의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막을 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동맹국들을 맹비난하다가 막판에는 “사랑이 가득했다”며 태도를 180도 바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자체 생산 권리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가디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 초반 나토 회원국들이 미·이란 전쟁에 협조하지 않았다며 “나토에 매우 화가 났다”고 공개 비판했다. 이어 스페인을 향해서는 “아무 무역도 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그린란드 병합 요구도 재차 꺼내 들며 자신의 주장을 비판하는 나토 회원국들을 되레 비난했다.
그러나 비공개 정상회의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그 방(회의장)은 사랑으로 가득했다”며 “정상들이 ‘각하,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다 큰 어른들이 한 말인데, 보기 좋지 않냐”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나토가 트럼프 대통령 달래기에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도 서명한 이번 나토 정상회의 선언문에는 나토 5조(집단방위 조항)에 대한 “철통같은 공약”이 명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병합 논란 및 이란과의 전쟁에 유럽 동맹국이 미국을 돕지 않았다며 지난 4월 “나토는 시험대에 올랐고 실패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하려 했던 걸 해냈다. 이건 당신의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을 끌어올리는 데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는 의미로 한 발언이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은 올해 국방비 지출이 지난해 대비 20% 증가했다고 WSJ는 전했다.
토마시 발라셰크 전 슬로바키아 나토대사는 이 같은 ‘아부 전략’에 대해 “요즘 기준은 상당히 낮다. 크게 틀어지지 않고 논란만 피하면 되는 것”이라며 “끔찍한 시스템이지만 다른 대안보다는 낫다”고 WSJ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거리를 두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을 만들 권리를 주겠다.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면 우리가 충분히 안 준다고 불평 못 할 것 아니냐. 너희가 직접 만들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적잖은 외교적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실제 생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실제 제조사인 RTX나 록히드마틴에 이 결정을 아직 통보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실제 생산까지 최소 1년, 길게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파비안 호프만 노르웨이국방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독일의 패트리엇 생산 사례를 들어 “12개월 안에 체계를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톰 카라코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미사일방어프로젝트 국장도 허가부터 실제 생산까지 수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당장 요격미사일이 고갈돼 러시아의 계속된 공습에 피해를 보고 있다. NYT에 따르면 이번 주에만 러시아 공습으로 50명 넘게 사망했고, 지난 6일 밤에는 러시아가 발사한 탄도미사일 23기 중 단 한 기도 요격하지 못했다. 8일 새벽에도 탄도미사일 5기를 모두 막는 데 실패했다.
세르히 혼차로프 우크라이나국방산업협회 상무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실질적 군사지원을 약속한 것이라기보다 “미국의 지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신호”로 평가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올해와 내년 800억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