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폐쇄·인공지능 도입으로 일자리 위기
직업훈련·창업지원 담겼지만 임금보전책 빠져
독일 탈탄소법, 4만명에 ‘고용조정지원금’ 지급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김정근 기자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하고 석유·화학산업이 축소되는 등 AI·녹색 전환이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고 일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가 일자리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측하고 사회 안전망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기본계획을 처음 공개했다. 다만 구체적인 소득 공백 대책은 이번 계획에 담기지 않았다.
정부는 9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디지털 전환(AX)과 탄소중립 전환(GX)이 맞물린 ‘복합 전환’이 야기할 고용 충격에 대비한 5년 단위 계획이다.
우선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 변화를 상시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한다. 내년까지 한국 노동시장에 맞는 ‘한국형 AI 노출지수’를 개발해 AI가 직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AI 영향을 많이 받는 직무를 선별한 뒤, 산업·연령별 고용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한국형 카나리아 대시보드’를 운영한다. 카나리아 대시보드는 미국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가 개발·공개한 분석 도구로,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군의 고용 변화를 추적한다. 정부는 모니터링에서 일자리 위험 징후가 나타나면 맞춤형 대책을 수립할 방침이다.
고탄소 업종은 고용 충격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석탄발전은 2040년까지 발전소 40기가 폐쇄되면서 정비·운전지원 등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영향을 받는다.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 확산으로 내연기관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업체 노동자 27만여명이 영향권에 들었다. 43만여명이 종사하는 석유화학은 노후 설비를 친환경 공정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
주요 업종별 배출?공정?탄소저감?종사자 등 현황. 산업별 인적자원개발위원회
정부는 충남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등 고용 충격이 큰 지역에 협의체를 운영해 전환 동향을 상시 점검하고, 고용 충격 현실화 시기와 규모를 파악해 맞춤형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전환 충격이 큰 지역은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로 지정해 행정·재정 지원을 집중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시설이 보급되면 새로운 일자리도 생길 것이라며 운영·유지보수 등 ‘그린칼라’ 직종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직업훈련과 창업 지원도 확대한다. 비수도권 중심으로 훈련 인프라를 확충해 2030년까지 100만명 이상에게 AI 직업훈련을 지원한다. 재취업지원서비스 의무 사업장은 근로자 1000명 이상 사업장에서 2029년까지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을 지원하고 사회적기업 일자리를 2030년까지 9만명으로 늘린다. 소득 기반 고용보험을 내년부터 시행하고, 성과공유제 대상을 플랫폼·유통 등 기업 간 거래 전반으로 확대한다.
다만 정부는 산업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득 공백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독일은 2038년까지 진행하는 완전 탈석탄 정책으로 일자리를 잃는 발전소 노동자 등 최대 4만명에게 ‘고용조정지원금’을 지급한다. 58세부터 연금 수급 시점까지 소득감축분을 보전하고, 조기 퇴직으로 연금이 줄어들면 보상금도 지급한다. 덴마크는 전직 후 임금 하락분의 30~50%를 보험으로 보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소득 공백을 어떤 방식으로 보전할지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매년 연차별 계획에서 세부사업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후위기와 AI, 인구 감소는 떼어놓고 볼 수 없는 복합위기인데 이번 계획은 과제가 병렬적으로 나열된 느낌”이라며 “구체적인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녹색산업이 확대된다고 좋은 일자리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자리 양뿐 아니라 원·하청 구조와 비정규직, 임금 수준, 고용 안정성 등 일자리의 질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