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살아생전 식구들과 둘러앉은 식탁에서 가장 많이 하셨던 말은 “뭐라구?”였다.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건지, 아니면 맥락 파악이 잘 안 되는 건지 누군가 한마디할 때마다 매번 그렇게 되물으셨다. 당연히 이야기는 툭툭 끊겼다. 그래도 우리는 “궁금해서 그러실 거야” “답답하시겠지”라며 다시 말하거나 조금 더 천천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늘 그렇게 사려 깊었던 것은 아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왜 그렇게까지 다 들으려고 하실까. 적당히 못 알아들어도 그냥 넘어가시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는 “뭐라구?”를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라기보다 늙음을 초연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안간힘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후배들과 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계속 “뭐라구?”를 연발하고 있는 것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어머니의 노화는 심혈관계 질환이나 당뇨 같은 만성 대사질환보다 감각기관의 쇠락에서 먼저 찾아왔다. 시력은 황반변성으로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청력 역시 일찍부터 떨어졌다. 자식들은 오래전부터 보청기를 권했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노화의 낙인처럼 여긴 탓인지 끝내 완강하게 거부하셨다. 결국 보청기 없이는 일상적인 대화조차 어려워진 뒤에야 보청기를 착용하셨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인데, 노인성 난청은 단순히 소리의 볼륨이 작아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리는 들리지만 말소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함께 떨어지는 것, 흔히 ‘가는귀먹었다’고 하는 상태다. 당시 어머니도 그런 장벽에 처해 있었던 것 같다.
노화의 방식도 유전인지, 나도 얼마 전 황반변성 초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겁이 난 나는 ‘루테인’을 열심히 챙겨 먹는다. 그런데 급기야 “뭐라구?”라고 되묻는 사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러다가 민폐 덩어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엄마처럼 버티지 말고, 때가 되면 늦지 않게 보청기를 끼겠다는 결심도 한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할까? 보청기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날이 결국 오지 않을까?
옛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노년은 감각이 하나씩 꺼져가는 서글픈 종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외부에 대한 호기심을 거두고 오직 자기 내부에서 기쁨을 길어 올리는, 실존의 정점이었다. 육체의 쾌락도, 사회적 야망도 더는 붙들지 않고, 시선을 안으로 구부려 자신의 평정을 조율하여 마침내 독립적이고 충만한 상태에 이르는 것. 그들은 그 이념을 향해 ‘가장 빠르게 노년으로 달려가기’ ‘마지막 날처럼 오늘을 살기’ 같은 말들을 벼려냈다.
영화 <모리의 정원>은 이 철학을 구체적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주인공의 실제 모델은 일본 근대미술의 거장 구마가이 모리카즈로, 30년 넘게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속 그는 매일 아침 식사를 끝내고 먼 길이라도 가듯 채비하고 나선다. 하지만 결국 두 지팡이를 짚고 향하는 곳은 집 앞 정원이다. 나무의 새싹에게 “여태 자라고 있었는가” 묻고, 돌 위에 누워 몇 시간이고 개미와 눈을 맞춘다. 그 손바닥만 한 정원의 꽃, 사마귀, 물고기 속에 우주의 비의(秘義)가 다 들어 있었다. 그가 보아야 할 세계는 처음부터 그 정원 하나로 충분했다.
어머니가 “뭐라구?”라고 한 것은 어쩌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노년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모리의 정원’이 없었다. 평생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자식을 키우느라, 어머니의 눈과 귀는 온통 바깥을 향해 있었다. 나는 어떨까? 속수무책 늙음이 오고 있는 이때,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스토아적 현인이 말하듯이 그것이 어느 날의 회심이 아니라 매일의 단련 속에서만 얻어지는 것이라면, 생각하고 보고 듣고 말하는 일상을 조금씩 더 견결하고 단순하게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내게도 “뭐라구?”가 올 때마다, 그 말이 세상을 붙잡기 위한 외침이 아니라 내 안으로 향하는 조용한 질문이 되는 연습부터 시작해야겠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