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시간이다. 축구공 하나가 지구를 하나의 촌으로 묶는다. 아침 식탁에서 머리 맞댄 접시를 보다가 지구촌에 대해 떠오른 생각 하나. 맹물과 짠물은 그 분리가 절묘하다. 누가 소금을 풀어놓아 그 결정을 녹이느라 바다는 오늘도 바쁘다. 파도는 해야 할 숙제가 있어 육지를 다 덮치지 못하고 도로 돌아간다. 뭍의 외곽인 바다에 소금이 없어 민물처럼 밍밍했더라면 이 세상의 부패를 지구는 어떻게 감당했을까.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봉평에서 대화까지 하룻밤 장돌뱅이들의 이야기다. 90년 전 발표되어 저 고단했던 시대를 등불처럼 깜빡깜빡 비추는 단편소설.
달빛 아래 나귀와 함께 메밀밭을 딸랑딸랑 걸어가는 세 사람. 좁은 길을 나아갈 때 짙은 어둠을 배경으로 그들의 인생도 갈마든다. 나에게도 내 나이가 있다. 나이가 가르쳐주는 문장이 즐비한 저 소설을 종종 읽는다. 봉평에 거처를 마련한 꽃동무의 집에 가 현장에서 읽는 맛은 또 다르다.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 드팀전을 걷은 허생원이 저녁을 때운 곳 같은 ‘봉평장터국밥집’. 바다에서 온 귀한 소금으로 간을 맞추며 나도 저녁을 때우고 산책에 나섰다. 허생원이 하룻밤 사랑을 나눈 곳을 재현한 물레방아 옆 산허리에 네온사인이 소설 한 구절을 큰 글자로 밝히고 있다. 하필이면 참으로 고맙게도 이런 문구일까. ‘소금을 뿌린 듯’.
다시 월드컵 축구. 통통 튄 축구공이 지구를 여러 바퀴 돌린 뒤 훌쩍 뛰어든 스타디움. 미국을 납작하게 누른 벨기에 선수들이 둥글게 둘러서서 며칠 전 누가 추던 춤을 흉내 내고 있다. 환호작약하는 선수들의 이마마다 땀방울이 소금처럼 송골송골 맺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