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남을 집적거려 일을 일으킨다는 뜻, 그대로였다. 6 대 2로 크게 이기는 데다 8회까지 왔으니 경기 자체를 즐겨도 될 상황이었다. 이기는 팀의 응원은 상대에 대한 모욕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어떤 심산인지, 집단 율동과 함께 그 이상한 ‘응원가’를 불렀다. 지는 팀, 곧 약자는 더 밟아야 한다는 못된 심보가 엿보였다.
내용은 더 문제였다. 광주 학생들에게 5·18 학살을 연상케 하는 ‘스타벅스’ ‘탱크’ 등 자극적인 말로 상대를 조롱하는 것은 “탱크로 깔아뭉개버리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왜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은 미리 연습까지 해서 이런 응원을 했을까? 몰라서? 어려서? 또는 지고 있는 상대가 만만해 보여서? 약자에게는 함부로 해도 되니까?
선수들만 이상했던 게 아니다. 배재고 야구부 감독과 코치는 왜 학생들을 말리지 않았을까? 운동부에서 감독과 코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니, 그저 조용히 하라는 한마디만으로도 일이 터지지는 않았을 거다. 감독과 코치는 자신들이 지도하는 학생들이 혐오를 바탕으로 상대를 모욕하고 저주하는데도 수수방관했다.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일 수는 없다.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제지해야 했다. 경기를 관람하던 배재고 교사들과 학부모 중에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심판과 경기감독관도 마찬가지였다. 중립 지대에 있던 심판과 경기감독관은 달랐어야 한다. 심판의 역할이 그저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명하는 게 전부여선 곤란하다. 그런 결정이야 사람보다 기계가 훨씬 쓸모 있는 세상이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부모와 선생이 함께하는 자리, 관중이 지켜보고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상황이었다. 지고 있는 상대 팀이 치를 떠는데도 대놓고 상대를 모욕하고 혐오했다. 이 놀라운 상황은 박자를 맞춰가며 함께 율동하고 떠들었던 배재고 야구선수들의 잘못이 명백하지만,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른 진영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추악한 모욕을 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발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실제로 윤석열은 못마땅한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내란을 벌이기까지 했다. 상대를 향한 악담과 저주는 도를 넘은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남아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몹쓸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10대의 혐오와 차별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아이는 어른의 반영이다.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재고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에 생긴 일탈이다. 배재고가 위치한 서울의 교육은 지난 16년 동안 대개 진보교육감이 맡았었다. 민주주의와 인권교육, 역사 계기 교육은 말뿐이었고, 실상은 학생들에게 가닿지 않았거나 실제로 진행하지도 않았던 거다.
문제를 확인했으니, 이젠 처방이 필요하다. 배재고 야구부원과 관계자들이 광주까지 찾아가 사과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회성 이벤트, 일회성 교육의 한계는 뻔하지만, 혐오와 차별, 모욕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기본은 확인할 수 있었다.
잘못했으니, 야단도 맞아야 한다. 그게 6개월 출전정지인지는 좀 더 꼼꼼한 교육적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남을 아프게 하면 자신도 벌을 받는다는 평범한 교훈을 체감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다만 예측 가능성이 문제다. 여태껏 이런 잘못을 저지르면 얼마나 혼나는지를 배운 적도 없는데, 갑자기 무거운 벌을 받는 건 온당하지 않다. 이번엔 조금 덜 무거운 벌을 받고, 다음부터는 예외 없이 ‘선수 자격 박탈’ 등 엄한 처벌을 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당시 경기를 지켜보고도 수수방관만 했던 코치진을 비롯한 배재고 관계자들은 학생들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거운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한다. 잘못을 방치한 잘못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기장만이 아니라 어디서든 지역차별, 인종차별, 성차별 등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두고 상대를 모욕하는 일이나, 집단학살 등 반인도적 범죄, 성범죄 등을 옹호하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행위는 그걸 응원이라 하든 뭐라 부르든 간에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 이를 부추기고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극단적인 사람들에 대한 안전장치도 서둘러 마련하면 좋겠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남을 괴롭히고 해칠 자유까지 보장하는 건 아니다. 남을 괴롭히고 해치는 건 범죄다. 이제 교훈은 마련했으니, 앞으로는 단호한 대응이 남았다. 배재고는 이런 측면에서 중요한 순간에 망신스러운 이름을 남겼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