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호가 닿지 않는 곳으로
최의택 외 지음 | 북바이북 | 344쪽 | 1만5000원
로켓이라는 말을 듣고 탈출이나 해방의 감정을 연상하는가? 지긋지긋한 ‘여기’를 떠나 저 멀리 가버리는 것. 다들 홀린 듯 달려갈 때 ‘어디로 가냐’고 물으면 별 이상한 소리 다 듣겠네 하고 꼬아보는 세상을 저버리는 것. 나에게 엑스표를 치고 비좁은 우리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는 규범을 박차버리는 것.
<우리의 신호가 닿지 않는 곳으로>는 SF 앤솔러지다. 소설가이자 교양서 작가 전혜진이 국산 로켓 누리호 2차 발사 때 다른 작가들을 ‘꼬셔서’ 로켓 소재 단편을 쓰게 했다. 제안 e메일을 받은 다섯 명의 작가들이 로켓 속도로 회신을 했다던가?
한국 SF 작가들은 단편의 대가들이다. 1만5000자가량의 글 안에 말 그대로 우주를 넣어 주무를 줄 안다. 특히 여러 작가가 참여한 앤솔러지는 작가들 입장에서는 비교적 빨리 글을 완성해 책을 낼 수 있고, 독자 입장에서도 특정 소재를 느슨하게 공유할 뿐 스타일과 접근방식이 다른 여러 작가의 글을 두루 경험할 수 있으니 가성비가 높다. 더욱이 단편은 무한한 보물창고다. 과학소설에는 작품마다 고유의 세계설정이 있다. 한번 공들여 만든 세계가 단편을 통해 첫선을 보이고 나면 이 세계에서 일어날 다른 일들이 궁금해진다. 그럴 때 작가는 그 설정을 가지고 장편이나 연작을 쓰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실린 ‘나의 탈출을 우리의 순간들로 미분하면’은 조금 특이하다. 작가 최의택은 장편 <0과 1의 계절>을 탈고한 다음, 순서상 뒤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썼다(출간은 단편이 먼저 됐다). 장편에서 모두가 선망하는 ‘밸리’라는 세계에 옮겨 살게 된 사강이, 그 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닫고 일부러 사고를 친 다음 밸리에서 쫓겨나서 남아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게 바로 이 단편이다. 밸리는 디지털 인격들이 사는 가상 세계로 외모도 성별도 장애도 무의미한 곳인데도 사강은 자유롭지 않다. 단순히 밸리를 떠나는 것도 모자라 지구마저 떠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끝없이 자격과 승인을 구해야 하고, 보통이라는 규범에 나를 구겨 넣는 삶은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옷 같은 것이다. 사강은 차례대로 세 번의 탈출을 감행하는데, 마지막은 슬프고 찬란하다.
로켓은 새벽이니 총알이니 같은 말과 붙어다닌다. 하지만 눈치도 빨라야 하고 소비도 폐기도 빨라야 하는 세계가 싫어서 떠나고 싶을 때, 로켓은 그 사람의 소유였으면 좋겠다. 로켓은 자유의 유의어이지 과속과 맹목의 수식어가 아니니까.
김시형 그린북 에이전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