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폐함
강여름 지음
봄알람 | 176쪽 | 1만5800원
“내 딸은 상 차리는 사람 말고 엎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아이유)은 말한다. 1950년대생인 애순은 고된 시집살이를 묵묵히 버텼다. 시할머니가 딸 금명을 멋대로 해녀로 만들려고 한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딸을 지키기 위해 그는 손수 제사상을 뒤엎는다.
1970년대생인 저자도 딸들을 지키기 위해 상을 엎었다. 종갓집 종손과 결혼한 그는 ‘17대 종손부’였다. 질리도록 “아들을 낳아라!”는 말을 들었다. 태어난 두 아이는 모두 딸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았다. 종가 일원 개개인은 또 나름대로 다정하고 헌신적이었기에, 냉정히 돌아서기도 어려웠다.
‘이렇게는 안 된다’는 자각은 뒤늦게 찾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첫째 딸이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면서다. 어려서부터 “왜 남자들은 거실에서 노는데 여자들만 부엌에서 일하냐”고 묻더니 한동안 “남자가 되고 싶다”고 하던 딸. 그 아이가 남존여비 사상이 묻어나는 종가의 풍경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외칠 때, 저자는 이 굴레를 깨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은 저자가 결혼 13년 만에 반기를 들고, 그로부터 2년 가까이 흐른 2019년 제사가 전부 없어지기까지의 이야기다. 놀랍게도 가부장 체제의 꼭대기로 보였던 ‘16대 종손부’ 시어머니가 저자의 아군이 됐다. 저자는 이 혁명을 “1940년대, 1970년대, 2000년대 출생 삼대 여자가 함께 만들었다”고 말한다.
유쾌하고 솔직하게 쓰였다. 시부모와 종가 일원을 나쁘게만 그리지 않는다. 저자는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람들이 왜 가부장적인 관습을 버리지 못할까’라고 고민하는 쪽이었다. 그는 자신도 관성에 젖어 있었다고 고백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가부장제와 싸우고 있을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