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
올해 공식 초청언어 한국어
28년 만에 한국 작품 공식 초청
한국 공연 열린 극장 앞 긴 줄
공연 뒤 기립박수에 “브라보”
“한국 문화로 들어가는 ‘문’ 발견”
11일(현지시간) 아비뇽 페스티벌을 찾은 관광객들이 공연 포스터가 붙은 거리를 지나고 있다. 노정연 기자
프랑스 남부의 작은 고도(古都) 아비뇽이 한국어로 물들고 있다. 교황청 광장을 중심으로 수백 개의 공연 포스터가 도시를 뒤덮은 가운데, 거리 곳곳의 안내판에는 프랑스어와 한국어가 나란히 적혀 있다. 극장 앞은 한국 공연을 보기 위한 관객들의 긴 줄이 이어졌다.
지난 4일(현지시간) 개막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의 주인공은 한국 공연예술이었다. 올해 공식 초청 언어로 한국어가 선정되면서 한국 작품들이 축제 전면에 나섰다.
한국어가 공식 초청언어로 선정된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 현장. 곳곳에 한국어가 함께 표기된 안내판들이 눈에 띈다. 노정연 기자
아비뇽 페스티벌 현장의 한국 공연 포스터. 노정연 기자
특정 언어권의 예술과 문화를 집중 조명하는 초청 언어 프로그램에 한국어가 선정된 것은 아시아 언어권 최초이자 영어·스페인어·아랍어처럼 여러 국가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단일 국가 언어로도 처음이다. 이와 함께 축제 공식 프로그램(IN)에 연극과 무용, 판소리, 다원예술 등 총 9편의 한국 공연이 초청됐다. 한국 작품이 아비뇽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된 것은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11일 직접 둘러본 아비뇽의 거리 풍경은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실감하게 했다. 공식 초청작 중 하나인 <긴: 연희해체프로젝트Ⅰ>의 공연이 있던 이날 저녁, 마하바라타 페스티벌 바 극장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11일(현지시간) 마하바라타 페스티벌 바 극장에서 <긴: 연희해체프로젝트Ⅰ>의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노정연 기자
줄을 서 있던 프랑스 리옹 출신의 관객 마리 뒤부아는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라고 해서 찾아왔다”며 “K팝과 영화는 접했지만 한국 공연은 처음이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공연이 끝난 뒤엔 곳곳에서 기립 박수와 “브라보”를 외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파리에서 온 한 관객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한국 문화에 대한 ‘문’을 발견한 것 같다”며 “음악과 에너지, 춤이 어우러진 멋진 쇼였다”라고 감상을 밝혔다.
이번 축제 공식 프로그램에 초청된 작품들은 동시대 한국 사회를 다양한 시선으로 비춘다. 전통 연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긴: 연희해체프로젝트Ⅰ>을 비롯해 제주 4·3을 다룬 이경성 연출의 <섬 이야기>, 기후 위기를 몸의 감각으로 풀어낸 허성임 안무의 <1도씨>, 해녀들의 노동을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풀어낸 <물질> 등이 현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아시아 최초로 ‘연극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입센상을 받은 구자하 연출은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 <하리보 김치>까지 세 작품을 선보인다. 톨스토이 단편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이자람의 <눈,눈,눈>도 주목받는다.
허성임 안무의 <1도씨>와 이자람의 <눈,눈,눈>을 1면에 실은 현지 신문들. 노정연 기자
오는 15~16일 공연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 공연은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될 전망이다. <새(Oiseau)>라는 작품명으로 아비뇽 교황청 명예극장에 오르는 이 작품은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낭독자로 나선다.
교황청 인근에서 만난 현지 관광객 장 뤽은 “한강 작가의 작품은 프랑스에서도 많이 읽히고 있다”며 “이번 축제에서 가장 기대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현지 관계자는 “처음 한국 공연을 낯설어하던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일부 공연은 현장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버스킹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신한대학교 케이팝학과 안소현(1학년), 최예나·김규리(2학년)씨. 현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케이팝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노정연 기자
11일(현지시간) 마하바라타 페스티벌 바에 마련된 한국 음식 부스가 관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노정연 기자
공연장 밖에서도 한국 문화 즐기기가 한창이다. 봉준호·박찬욱 감독의 영화 상영을 비롯해 정금형·이우환 작가의 전시, 한국문화도서전, 케이팝 버스킹 공연, 한식 부스 등 다양한 한국 문화 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르몽드는 ‘빛과 그림자 속의 한국’(La Corée du Sud en clair-obscur)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K팝과 K뷰티 이면의 한국 사회를 성찰하는 작품들이 아비뇽에서 소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AFP통신은 한국어가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의 초청 언어가 된 의미와 함께 그동안 유럽 무대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한국 공연예술이 대거 소개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비뇽 페스티벌’을 찾은 관객들이 11일(현지시간) 한 극장 앞에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노정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