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일 때 언제나 개혁적 중도 정당인 것처럼 포즈를 취한다. 그러다 집권 여당이 되면 숨겨져 있는 본색을 드러내듯 언제나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 정책을 밀어붙인다.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성장이란 곧 자본의 탐욕스러운 증식일 뿐이지만,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더라도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의존은 수구 정당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민주당이 집권하고 난 다음에 어김없이 수구 세력이 권력을 차지하는 반복적인 현상은 민주당이 추구하는 경제 성장이 결국 기득권 세력을 강화해주는 결과를 낳음과 동시에 최소한 중도 개혁이라도 바랐던 민심을 저버린 탓이 클 것이다. 자본주의 현실을 벗어나 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자본주의가 마냥 좋지는 않다는 숨겨진 민심을 헤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를 찬양하거나 의식하고 사는 서민들은 많지 않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짙을지언정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른바 메가프로젝트 발표 이후 그 후폭풍이 거세다. 수구 세력이 쏟아내는 ‘역차별’ 같은 말들은 들을 가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가프로젝트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연 한 국가의 경제를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무기 산업에 다 걸어도 좋은가 하는 경제에 대한 상식적인 우려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메가프로젝트가 우리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인 자연을 파괴하고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기후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후위기 문제는 윤석열 정권 때만 해도 제법 회자되던 의제였는데,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 인공지능에 싹 가려져 버렸다. 아니, 아예 폐기처분된 것처럼 보인다. 그사이에 탄소 배출이 줄어서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고 폭우와 가뭄이 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AI에 가린 기후 위기·빈부 격차
그럴 리가 없다. 이미 지난봄부터 여름 날씨가 불쑥불쑥 찾아왔는데, 그 이유는 북극 얼음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줄어드는 통에 제트 기류가 느려지고 물렁물렁해져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날아온 경고는 여름 날씨다. 재난에 대해 정치나 행정은 언제나 사후약방문을 자신들의 최고 할 일로 여긴다. 그러니까 재난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평소에는 무엇을 할까? 그것은 바로 돈벌이에 몰두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본주의적 돈벌이 행위가 엄청난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이며,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것은 오늘날 기후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른바 메가프로젝트 어디에도 기후위기와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 격차는 반영되지 않았다. 눈만 뜨면 보도되는 것은 코스피 지수와 반도체나 살상무기 기업들의 실적 발표다. 국산 잠수함과 전차와 대포의 우수성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주 튀르키예에서 열린 나토 방산 포럼에 참석했는데, 어떻게든 국내의 살상무기 기업들을 나토의 무기 공급망에 끼워 주기 위함이었다. 대통령이 밀어주는 기업들이 아무리 좋은 실적을 올린들, 서민층이나 저소득층의 삶이 나아질까? ‘뼈빠지게’ 지은 농산물이 헐값이 되어버린 농촌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발표된 국가데이터처의 통계는, 아직도 믿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이른바 ‘낙수 효과’는 없다는 것이었다. 설령 이익을 많이 낸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복지에 쓴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민주당이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말도 언제나 허언에 불과했던 것 같다. 지금은 노골적인 기득권 세력에 지나지 않은데, 민주당은 두 번이나 연이어 ‘시민 혁명’의 열매를 가져갔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집권 후 민주당이 보여준 것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진로와 방향이 아니었다. 눈만 뜨면 권력 투쟁이었고, 유튜브에 서식 중인 정치 세일즈맨들과 손잡고 정치를 저열하게 하는 데 일조했을 뿐이다. 이런 사회적 공기 속에서 우리 사회에 혐오와 조롱의 문화가 번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들도 조롱을 기본으로 한 채 전개되는 실정이다. 이제는 아예 조롱과 풍자 자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적, 감성적 결핍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은 ‘서민의 정당’이란 허언
인공지능 산업이나 반도체, 무기 산업 등은 기본적으로 파괴 산업이다. 즉 누군가를 죽이거나 무언가를 파괴해야 성장하는 산업인데, 이것들을 통한 경제 발전은 파괴적인 문화가 점점 더 공고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민주시민교육을 한들 요즘 횡행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극우 놀이를 막지 못한다. 파괴 산업의 열매를 먹고사는 상품 소비자가 주인인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자체가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권이 위선적이라고 비난받는 것은, 공동체를 앞세우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그것을 갉아먹는 경제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황규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