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15년을 살면서 사투리를 구사하진 못하지만, 경상도 사투리의 미묘함을 살피는 걸 좋아하게 됐다. 유튜브의 사투리 콘텐츠 중에 보지 않는 게 없을 지경이다. 이제는 경남·경북 사투리의 차이, 부산말과 마산말의 차이, 같은 경남이지만 동서 간 사투리의 차이도 분명하게 느껴지곤 한다. 예컨대 성조가 앞에 오냐, 뒤에 오냐로 남북이 갈린다. 밥 먹었냐고 물을 때 “밥 뭇나”에서 성질이 급한 대구 사람들이 “밥”에 강세를 주고, 말을 굴리는 부산 사람들이 “뭇”에 강세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피란민까지 품었던 부산이나 전국에서 일하러 온 노동자들을 품었던 창원과 거제, 포항 같은 도시에서 노동자 2세대의 사투리가 억양은 센데 단어는 또박또박 귀에 다 들리는 이유가 말이 뒤죽박죽 섞였기 때문이라는 점도 알게 됐다. 거제에 처음 갔을 때 토박이 직원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여러 차례 상경해서 학교를 다녔던 또 다른 토박이 부장님에게 “저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연신 묻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지난해부터는 전라도 사투리에 빠졌다. 초등학생 시절 전남 담양의 큰집에 내려갔을 때, 할머니와 큰아버지가 내뱉는 “이잉” “시방” “니기들” 같은 표현이 정겹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곳저곳의 미묘한 표현 차이는 몰랐었다. 그런데 지난해 OTT에서 방영된 <파인: 촌뜨기들>에서 유노윤호(정윤호)가 구사하는 목포 사투리가 걸쭉해서, 그 임팩트에 전라도 사투리의 미묘한 차이를 단박에 알게 됐다. 북쪽에서 “오메” 하던 말은 남쪽으로 내려가며 “흐미”를 거쳐 “왐마”까지 바뀐다. 곱씹어 보니 내가 친가로부터 들은 사투리들은 모조리 전북 순창과 인접한 담양의 것과 뒤섞인 말들이었다.
서울말은 오염된 말
서울말은 서울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지만 오염된 말이다. “쩐다” 같은 표현은 인천말이다. 옛 배우 오현경이 쓰던 토박이 서울말의 이북말 같은 높은 성조는 호남인들의 대규모 이주 이후 30년을 지나며 완연히 눌려 사라져버렸고, “겁나” 같은 표현을 전라도 사투리라 생각하지 않고 쓰는 사람도 제법 있을 것이다. 영남에서만 조부를 부르는 표현이었던 ‘할배’는 어느새 서울에서도 통용되게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의 <너에게>를 들으면서 “네게”로 읽는 서태지가 서울 토박이라는 걸 상기하곤 한다. 이젠 “네게”로 읽는 서울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경기도나 이북 출신들이 서울로 지속적으로 유입되었다면 “네게”로 읽었겠지만, 삼남지방 이주민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후세대가 말에 풍화를 일으켜 “네가”는 “니가”를 거쳐 “너가”로 주류 표현이 변해왔다.
사실 사람들이 쓰는 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산간벽지 소수 사람들이 쓰는 말은 물론이고, 1200만 인구가 거주하는 영남(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사투리의 차이를 구분하는 사람도 영남에 사는 사람들 정도다. 상경한 경상도 사람들이 사투리를 잘 구분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연구가 밝히듯 그들의 사투리 감각은 떠나던 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982년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서 일자리 잡고 살게 됐으면, 그 감각은 자신이 쓰는 말의 풍화 속에서도 1982년에 머물러 있기 일쑤다.
아이돌 가수의 “무섭노”가 경상도 사투리인지, 일베(온라인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어인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의문사를 대동하는 ‘노’와, “예”와 “아니요”를 묻는 ‘나’의 차이를 모르는 영남 바깥의 사람들이 그 차이를 배우는 중이다. 사실 “와이리 무섭노”에서 “와이리” 같은 의문사가 탈락하고 “무섭노”만 말해도 되냐고 묻는 영남 주민들도 있는 걸 보면, 말에 대한 합의가 세대 간의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잘 드러낸다. 물론 일베의 영향도 있었을 수 있다. 황우석 사태 때 생명윤리를 한국인들이 공부한 것처럼, 이참에 사투리 생태계를 잘 알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뭐든 배우는 걸 좋아하는 게 한국인들 아닌가?
정치인이 왜 일상어를 뺏으려 하나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노’를 어미로 붙이고 ‘이기야’를 남발하며 낄낄댄 것이 경상도 사람들이었나? 어떤 정치인은 일베의 영향이 묻어 있는 ‘노’를 아예 쓰지 말자고도 하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나름의 말의 생태계에 살던 영남 거주민들은 왜 일상어를 잃어야 하는가. 서울에 거주하는 상경 영남인들이 떠나던 날의 감각으로 지역에 사는 영남 주민들에게서 말을 뺏는 것이 황당하다. 전국 각지 사투리가 사람들의 이동과 대화 속에 얽히고설켜 한국말을 더 풍성하게 만들길 희망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