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2022년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랐던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한 장면. 총 4부작으로 이뤄진 전편을 보는 데 15시간 이상이 걸린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총 15시간 넘는 4부작의 요약본
북유럽 신화에 바탕 둔 대서사시
장시간 공연에 독특한 풍경 연출
공연 시간은 4시간. 웬만한 오페라 한 편보다 길다. 그런데도 ‘하이라이트’다. 다음달 8일(예술의전당)과 14일(부천아트센터) 공연되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이야기다. 원작은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어지는 4부작이다. 네 작품을 모두 보는 데 15시간 넘게 걸린다. 그래서 보통은 날을 달리해 한 편씩, 네 차례에 걸쳐 올린다. 요약본이 4시간에 이르는 이유다. <니벨룽의 반지>는 요즘 말로 표현하면 시즌제 판타지 드라마에 가깝다. 게르만·북유럽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반지를 둘러싼 신과 난쟁이족, 거인, 인간의 욕망을 여러 세대에 걸쳐 그린다.
한 세대의 탐욕과 권력욕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작품이 바뀔 때마다 반지의 주인과 중심인물이 달라진다. 무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작품이라 음악이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퀴레> 3막에 등장하는 ‘발퀴레의 기행’은 매우 유명하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헬리콥터가 공격하는 장면에 흐르던 선율 말이다.
다 보려면 적어도 나흘은 걸리는 이 작품은 공연을 넘어선, 거대한 이벤트다. 바그너는 150년 전인 1876년 독일 바이로이트에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기 위한 전용 극장을 지었다. <니벨룽의 반지> 전막을 올리며 첫 바이로이트 축제를 열었다. 가디언이 초연 당시 축제 보고서를 발췌해 보도한 내용(2016년 3월22일)을 보면 바이로이트는 축제 개막 전부터 바그너로 점령돼 있었다. 바그너 이름을 붙인 시가와 와인, 모자, 넥타이 등 온갖 ‘굿즈’가 상점을 채웠고 창문마다 <니벨룽의 반지> 음악이 흘러나왔다.
장시간 공연은 독특한 관람 풍경도 만들었다. 2024년 베를린 도이체오퍼에서 20시간에 이르는 <니벨룽의 반지> 전막을 감상한 베를리너 기자는 여느 오페라와 다른 포인트를 소개했다. 투구·날개가 달린 머리띠를 착용한 관객들, 이전에 본 <니벨룽의 반지> 프로덕션을 비교하는 모습, 근처 식당 정보를 나누는 풍경. 아이돌 팬덤의 오페라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도 식후경이다. 오후 4시에 시작해 밤 10시가 다 되어야 끝나는 공연을 보려면 저녁 식사 계획도 미리 세워야 한다. 극장에선 67유로(약 11만4700원)짜리 ‘링 메뉴’를 판매했지만 베를리너 기자는 막간을 이용해 극장 근처 거리에 있는 케밥집에 달려가 뵈레크를 먹었다.
저녁밥 문제는 첫 바이로이트 축제부터 심각했다. 미국 웹진 클래시컬 보이스에 따르면, 당시 러시아 매체 루스키 비에도모스티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축제를 찾았던 차이콥스키는 “밤 10시쯤 공연이 끝나면 극장 식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다”고 썼다. 15년 뒤 이 축제에 다녀간 마크 트웨인도 “내년에 오실 분들은 도시락을 꼭 챙겨오라”는 후기를 남겼다.
국내에서 <니벨룽의 반지> 전막이 공연된 것은 두 차례다. 2005년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마린스키극장 프로덕션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였다. 2022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선 만하임극장 프로덕션이 무대에 올랐다.
다음달 열리는 하이라이트 공연은 해외 극장의 전막 프로덕션을 들여오는 것과 다르다. 국내 기획으로 나흘간의 이야기를 하룻밤에 집어넣는 방식이다. 이 하이라이트는 거대한 반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입구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