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새 전시
▶이반 나바로‘무제(쌍둥이 빌딩)’
청계산 자락에 안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자연과 건축, 예술이 만난다. 건축가 김태수는 전통 건축의 공간 구성을 재해석했다. 지형을 따라 단 위로 올라 정문에 들어서면, 중앙의 나선형 램프를 거쳐 전시실로 이동하게 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숲과 하늘은 바깥의 풍경까지 미술관의 일부로 만든다. 1986년 문을 연 과천관은 한국 현대미술의 소장품 수집과 보존, 전시기획, 미술사 연구가 본격화한 거점이기도 하다. 40년의 시간이 쌓이면서 과천관의 상징인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진입로의 야외조각공원은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이 됐다.
‘MMCA 과천 40주년: 빛의 상상들’은 과천관이라는 장소가 주인공이다. ‘빛’을 매개로 소장품을 미술관 안팎에 배치해 관람객이 무심코 지나치던 장소를 새롭게 경험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전시는 미술관 로비와 브리지의 ‘광경’, 2원형전시실의 ‘잔상’, 야외조각공원의 ‘머무는 자리’로 구성된다.
로비의 밝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분장실 거울의 전구처럼 생긴 필립 파레노의 ‘마퀴’가 로비 입구에서 깜빡인다. 무언가 신호를 보내나 싶지만, 의미를 담고 있진 않다. 파레노는 작품이 놓인 공간과 그것을 마주한 관람객이 맺는 관계를 중시하는 작가다. 관람객이 전시장의 문턱을 넘는 순간을 ‘예술적 사건’으로 바꿔놓는 셈이다. 전시를 꾸린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딘가 들어설 때 기대감이 있잖아요. 용처럼 웅크리고 있는 ‘다다익선’을 마주하는 순간일 수도 있고, 미술관까지 숨차게 걸어와서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볼 때 드는 생각일 수도 있고요. 이러한 상상이 ‘마퀴’의 설치 의도 아닐까요.”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202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MMCA 40주년: 빛의 상상들’을 위해 장소특정적 설치로 재구성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3층 연결 통로(브리지) 통창 앞에는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가 놓였다. 가상의 도시를 횡단하는 두 인물의 여정을 통해 속도와 시간, 과거와 미래,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시공간을 상상하는 작품이다. 기존 3채널 영상을 브리지 공간에 맞춰 재구성했다. 테트리스 조각처럼 이어진 화면 사이로 창밖 풍경이 들어온다. 현재 전시 중인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의 이발소등으로 만든 설치작업과 김아영 작품이 한 시야에 들어오면 장면은 또다시 달라진다.
▶제임스 터렐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
제2원형 전시실은 지난 10여년 동안 전시실로 쓰이지 않던 공간이다. 빛을 통해 공간의 감각을 바꿔온 제임스 터렐과 이반 나바로의 작품은 곡면으로 휘어진 전시실을 절반씩 차지한다. 터렐의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는 빛이 공간을 물들이는 감각적 경험을, 나바로의 ‘에코(벽돌)’와 ‘무제(쌍둥이 빌딩)’는 네온과 거울이 무한한 깊이를 만들어낸다. 두 작품의 빛과 공간이 맞물려 관람객을 조용한 몰입 속으로 이끈다.
조각공원에선 관람객이 앉고 기대고 머물 수 있는 조각을 만날 수 있다. 한국 현대조각 1세대 최만린의 ‘태’를 비롯한 기존 작품들과 조응하듯 김하늘·방효빈·임정주·하지훈·황형신 등 젊은 작가들의 신작이 놓였다. 가장 젊은 김하늘이 1998년생이다. 세 전시는 자연의 빛과 예술의 빛을 겹쳐 과천관의 40년을 다시 걷고 바라보는 방식으로 기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