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섭씨 35를 웃돌던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한 소년이 분무형 냉방장치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지구를 덮친 초강력 엘니뇨가 세계 식량 가격 상승을 견인해 2028년까지 ‘기후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식량 가격이 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상황에서 극한 기후 현상까지 겹치며 세계 식량 공급망이 ‘이중 충격’을 겪게 됐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2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과학계에서는 2026~2027년 사이 발생하는 엘니뇨가 전례 없는 수준의 ‘매우 강한’ 엘니뇨로 발전해 폭염과 홍수, 폭풍우 등의 극한 기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5개월 이상 지속하는 기후 현상을 말한다. 초강력 엘니뇨는 소위 ‘슈퍼 엘니뇨’ 혹은 ‘고질라 엘니뇨’라고 불린다.
미국 캔자스주 맥스빌 인근 들판이 메말라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엘니뇨는 역대 가장 강력한 엘니뇨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지난달 태평양에서 온난화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 말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2도 이상 높아질 가능성이 63%에 이른다고 밝혔다. NOAA는 이번 엘니뇨가 1981~1982년, 2015~2016년, 2023~2024년에 발생한 엘니뇨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으며, 가뭄과 홍수로 인한 농작물 피해와 세계 식량 공급 차질 위험도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극한 기후 현상이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탈리아 은행 유니크레딧은 “엘니뇨로 인해 기후 인플레이션 문제가 다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엘니뇨 현상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증폭시켜 올 하반기 (세계 경제에) 새로운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유니크레딧은 엘니뇨로 전 세계 농업 생산이 14.3% 감소하고 생산 손실 규모는 3420억달러(약 51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주요 작물 생산국은 이미 엘니뇨의 영향에 직면했다. 세계 최대 쌀 생산국인 인도는 엘니뇨로 인해 몬순(우기)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강수량이 평년의 25~5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가뭄은 가공식품의 주원료인 팜유 생산 차질을 초래하고, 커피와 코코아 등 수확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더 덥고 습해진 기후 환경은 농작물 병해충 확산을 부추겨 장기적인 수확량 감소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반다시 외곽의 한 농경지에서 관정이 말라 있다. AP연합뉴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 같은 현상으로 인해 세계 식량 원자재 가격이 15.8%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쌀과 팜유, 설탕, 커피는 50%에서 100% 이상까지 급등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 식품 가격 역시 1.3% 상승할 것으로 관측된다.
엘니뇨발 물가 상승은 공급 차질이 시장 가격에 반영되는 시차를 감안하면 2028년 하반기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체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식량 가격 급등 여파는 북미 지역보다는 유럽 지역에서 더 크게 체감될 것으로 보인다.
미·이란 전쟁으로 세계 식량 시장이 흔들리는 가운데 슈퍼 엘니뇨까지 겹치면서 식량 가격 변동성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사소한 공급 차질조차도 과거 보였던 패턴과 달리 큰 가격 변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디언은 전쟁으로 큰 피해를 본 저소득 국가들이 엘니뇨의 충격 역시 가장 크게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2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서부 레크레이오 도스 반데이란테스 지역의 해변 산책로가 폭풍해일로 파손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