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활동가 다룬 다큐 ‘가능주의자’
박이윤정 감독 첫 장편 “기록 않으면 사라진다”
핫핑크돌핀스 만든 돌고래부터
개 도살장 잠입 영상 찍은 지연까지
“출구 없는 마라톤 뛰는 느낌 들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영화 <가능주의자>의 한 장면. 동물권 운동 활동가들이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고 있다. 이놀미디어 제공
2013년 서울대공원은 불법 포획됐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냈다. 2017년 모든 동물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단체 ‘동물해방물결’이 결성된다. 2021년 전후로 비건(채식주의) 상품을 내놓는 기업이 대폭 늘어났다. 2024년 ‘개 식용 금지법’(개의 식용 목적 사육·도살·유통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 동물권 운동이 지난 13년간 이뤄낸 일들이다. 운동 뒤에는 사람이 있다. 영화 <가능주의자>는 돌고래(핫핑크돌핀스)·지연(동물해방물결)·차랑(녹색당·멸종반란)·민선(시셰퍼드·넓적한물살이)·혜수(비거니즘을 온 대학에·뿌리:침) 등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한 다섯 여자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비건 콘텐츠 제작사 ‘비건먼지’를 운영하는 박이윤정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다. 그는 세월호, 퀴어, 장애,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해왔다. 박이 감독은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는 사라진다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주류의 언어가 자신의 이야기를 대변하지 못할 때 ‘내가 시작해야 하는 운동’을 개척한 청년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았다.
영화 <가능주의자>의 한 장면. 동물권 운동 활동가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이놀미디어 제공
다섯 청년은 자신이 어떻게 동물권 혹은 채식 문화에 관심을 두게 됐는지를 시작으로, 각자가 사회에 어떤 변화를 촉구해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훗날 핫핑크돌핀스를 만든 돌고래는 25살이던 2011년 ‘돌고래쇼 보지 마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선다. 지연이 개 도살장에 잠입해 기록한 현장 영상은 ‘개 식용 금지법’이 논의될 때 중요한 논거로 쓰였다. 영화는 개인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동물권 운동 공동체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빛나는 순간만 담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에 자리 잡으려던 동물권 소모임들을 크게 위축시켰다. 마트와 축제 등에서 피켓을 들고 육식을 규탄하는 ‘방해 시위’에 참여한 차랑은 “수위 높은 악성 댓글이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며 “운동권 안에서도 공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가진 게 몸과 연대뿐인 활동가들이 공장식 축산업에 맞서 싸울 선택지가 많지 않기에’ 행동에 나섰지만, ‘누군가의 일터를 방해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질문에 휘청이는 게 사람이다.
영화 <가능주의자>의 한 장면. 양계장에 빼곡히 갇힌 닭들. 이놀미디어 제공
다섯 여성은 동물권이라는 개념이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도 쉽게 가닿을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자신이 바라는 세상에 대해 설명한다. 이들이 신중히 고른 언어에서 덜 폭력적이며 비인간동물과 공생할 줄 아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10여 년이 보이는 듯하다. 승리감보다는 피로감을 비출 때도 있다. “출구 없는 마라톤을 뛰는 느낌”이라서다. 하지만 그사이 비건 식당과 제품이 대중화되고, 동물원을 떠올리면 ‘갇힌 동물들은 어떨까’ 생각해보게 되는 등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향상됐다.
박이 감독은 “거대한 역사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며 “우리가 만들어 온 길을 스스로 축하하지 못한 채 매번 아파하기만 한 것 같더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도 우리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며 “뒷세대들이 허둥대지 않고 걸어갈 수 있도록, 단단한 연대의 흐름을 세상에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15일 개봉. 79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