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AI를 개발하고 활용하기 가장 쉬운 나라를 만들겠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꿈꾸는 일본의 미래다. 한편, 마쓰모토 히사시 디지털상은 “이대로 가면 일본은 AI 식민지가 되고 말 것이다”라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AI 경쟁에 뒤처질 수 있다는 일본 정부의 초조함이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AI 식민지를 피하려 일본 정부가 개인의 권리 보호라는 의무를 내려놓았다. 지난주 국회를 통과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은 개인정보 문제에 매우 민감한 사회라는 인상이 강했다. 2016년 행정 정보를 하나의 번호로 관리하는 마이넘버 제도가 시작되었을 때를 떠올리게 된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한 제도 시행에 개인정보를 한데 모아 관리하면 유출과 오남용 위험이 커진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마이넘버 카드를 만들지 않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지금도 보급률이 80%에 머물고 있다. 그랬던 일본 사회가 이번 개정안에는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지금까지는 기업이 보유한 구매 이력이나 인터넷 이용 기록 등 개인정보를 다른 기업에 제공하려면 본인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개정법은 AI 개발을 포함한 통계 작성 등이 목적이라면 본인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정보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일정한 조건만 충족하면 이름과 주소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그대로 제공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병력과 범죄 경력, 신앙 등 유출될 때 차별과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어 특별히 보호해온 “요배려개인정보”도 예외가 아니다. AI 개발이라는 목적만 붙이면 매우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정작 당사자는 자신의 정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넘어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조차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후 감시와 피해 구제 장치도 허술하다는 점이다. 과징금 대상은 매우 제한적이고, 소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집단소송도 불가능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개인정보 전문가는 이번 법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허점투성이인 제도”라고 했다. 선량한 기업만을 전제로 만든 법은 선량하지 않은 기업이 나타나는 순간 무너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에서 보고된 개인정보 유출 사례는 1만7000건을 넘었다.
그런데도 이번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은 10년 전 마이넘버 도입 때와는 사뭇 다르다. 압도적 의석을 가진 다카이치 정부와 자민당은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지만 언론도 시민사회도 이 법의 위험성에 대해 묻지 않았다. AI 개발이라는 명목이라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를 기업들이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말았는데도 말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본인 개인정보가 공유되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더 불안한 것은, 그것을 불안하다고 말하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사회가 아닐까.
AI 식민지를 피하겠다며 개인정보보호의 원칙을 허문 일본의 선택이 한국에는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한다. AI 경쟁에서 앞서겠다는 조급함이 개인의 권리를 희생하도록 몰고 가서는 안 될 것이다. 미래 먹거리인 AI를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박진환 일본 방송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