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을 만나게 되면 늘 해보던 테스트가 있다. 어떤 나라 출신이든 그 바로 옆나라를 지도에서 찾아 그 나라에 대한 편견을 몇개 말해달라고 하면 조금 망설이면서도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편견이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 알제리 사람들은 튀니지 사람들에게 편견과 거부감이 있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은 옆나라 짐바브웨에 대한 거부감이 꽤 있다. 영국과 프랑스, 한국과 일본, 중국인들이 서로 그렇듯이 말이다.
이 테스트의 다음 단계는 그 나라에서 어느 도시 출신인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 사람이 수도 출신이 아니라면 분명히 수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을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나는 중국어를 잠깐 배울 때 언제나 점잖던 베이징 출신 선생님이 누군가를 욕한 것은 상하이 거주인들의 특성에 대해 말할 때였던 걸 기억한다.
거기에서 조금 더 줌인해보자. 보통 역사가 오래된 대도시 중앙에는 강이 흐른다. 그 강을 기준으로 북쪽이나 남쪽, 혹은 서쪽이나 동쪽으로 지역구가 나눠지기 마련인데, 그렇게 나눠진 구역들도 서로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늘 존재했다.
영어 표현 중에 ‘from the wrong side of the tracks’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철길의 잘못된 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인데, 안 좋은 동네 출신이라 보고 배운 게 없다는 식으로 표현할 때 쓰인다. 산업화 이후 도시가 커지면서 철길은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계층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깨끗한 주택가, 상점, 학교, 교회, 중산층의 삶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공장, 창고, 노동자 숙소, 매연, 소음, 빈곤이 있었기에 나타난 편견일 것이다. 그런 편견이 쌓여서 차별이 된다. 한쪽에 권력이 몰린다면 그런 편견은 더욱더 체계화되고 집요해진다.
이런 차별은 작게는 사위나 며느리를 구하면서 “강남 반포동 출신”만 찾는 부모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조금 더 크게는 미국에서 흑인들에게 흔한 이름으로 이력서를 넣었을 때 백인 이름보다 인터뷰 기회를 잡기 힘든 고용 차별로 나타난다. 권력의 차이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편견과 차별 역시 몸집을 키우고 사회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한다. 영국에서 몇백년 동안 유행한 아일랜드인 조크처럼 공공적으로 한 그룹을 매도하고 비웃어도 질타를 받지 않는다. 피해 그룹에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난 차별 농장에 시한폭탄처럼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끼얹었을 때의 최악 시나리오는 르완다이다. 투치족과 후투족 사이의 내전으로 100일 만에 100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인간 사회라면 공식처럼 무리가 생기고 파벌을 형성하며 알력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은 적게는 스포츠팀을 응원할 때의 뜨거운 함성으로 해소되지만, 오랜 시간의 권력의 차이와 차별대우의 방관이 더해지면 일방적인 폭력으로 발전한다. 그것을 우리는 혐오라고 부른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영국에서 아일랜드인을 비웃는 농담을 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의 자유를 뺏겼다거나, 역차별이라 외치는 이도 없다. 반대로 혐오가 더 심해진 곳도 있다. 수십년 후 우리나라가 어떤 쪽으로 나아갈지는, 사회 곳곳에서 불거지는 혐오에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함께 대처하는지가 결정할 것이다.
주한나 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원·데이터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