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예산 분배 투표를 제안한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예산 분배 투표를 제안한다

입력 2026.07.14 19:58

수정 2026.07.14 19:59

펼치기/접기

모임에서 하지 말아야 할 얘기가 있다고 한다. 종교 얘기와 정치 얘기다. 연예인은 선거에서 누구를 뽑았는지 말하지 못한다. 더불어민주당을 찍었다고 해도, 국민의힘을 찍었다고 해도 팬의 절반을 잃는다. 그런데 만약 “나는 내 몫의 나랏돈을 소방관 복지에 투표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잃을 팬은 없고, 오히려 화제가 될 것이다. 누군가는 아동복지에, 누군가는 신재생에너지에, 누군가는 우주개발에 투표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묻게 된다. 왜 하필 거기냐고. 그 순간 정책 논쟁이 시작된다.

이런 즐거운 상상의 출발점은 초과세수다.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넘쳐 들어온다. 올해 본예산 국세 수입 예상액이 390조원이었다. 내년엔 최소 500조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 같다. 증대된 세수를 어디에 써야 할지 논쟁이 붙었다. 즐거운 고민이지만 어려운 고민이다. 정부는 일단 ‘미래대응기금’을 만들어 적립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금은 어디까지나 일시적 주머니다. 돈은 써야 일을 한다. 미래 성장 잠재력을 만들고 국민 후생을 늘리거나 인프라 투자 등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쓸지 누가 어떻게 정할까?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 시스템은 500조원이 넘는 세수를 예측한 적도, 대비한 적도 없다. 갑자기 늘어난 수십조원의 우선순위를 정할 원칙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흔히 “국민적 합의를 통해 써야 한다”고들 말한다. 국민의 세금을 국민적 합의를 통해 쓰겠다는 것은 무조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공허하다. 국민적 합의란 대체 어떻게 확인하는가. 그래서 나는 보다 구체적인 장치를 제안해본다. 국민이 직접 지출처를 정하는 ‘국민배분 투표’(가칭)다.

국민배분 투표란 14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자기가 원하는 국가 재정 사업에 10만원씩을 배분할 권리를 주는 것이다. 14세 이상 인구가 약 4700만명이니 총 4조7000억원 규모다. 차년도 정부 예산안 발표 이후 국회 심의 전까지, 각자 배정받은 10만원을 원하는 사업에 증액하는 투표를 한다. 한 사업에 10만원을 ‘몰빵’할 수도 있고, 아니면 10개 사업에 1만원씩 배분할 수도 있다.

방식은 어렵지 않다. 정부 예산안의 16개 분야(과학기술, 교육, 복지 등) 중 하나 또는 여럿을 고르면 자동으로 각 분야에 속한 항(프로그램)이 펼쳐지게 된다. 예컨대 복지 분야를 고르면 장애인생활안정지원, 임대주택지원, 고용창출 등의 항이 자동 제시되고 이 중 하나 또는 여럿을 지정해 돈을 배분한다. 국회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투표 결과를 최대한 반영해 해당 항에 속한 세부사업을 증액한다.

이 제도의 진짜 효과는 4조7000억원의 배분 그 자체가 아니라, 배분을 둘러싼 논쟁에 있다. MBTI가 인기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모든 유형이 다 그럴듯하고 자기 마음에 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유형을 기꺼이 말하고 다닌다. 국민배분 투표도 마찬가지다. 어느 당을 찍었는지는 숨겨도, 자기가 어떤 사업에 투표했는지는 누구나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내 투표가 낙인이 아니라 명함이 된다.

그러면 논쟁의 지형이 바뀐다. 그동안 우리의 정치적 논쟁은 지나치게 지엽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누가 무슨 말실수를 했는지가 정책의 내용보다 더 큰 뉴스가 됐다. 그러나 14세 이상 전 국민이 각자 10만원의 사용처를 정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정책시장’이 형성된다.

각 정부 부처는 자기 사업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직접 설득해야 한다. 정당, 언론, 시민사회는 각자의 정책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예산서 속 낯선 사업명들이 저녁 식탁의 화제가 된다. 그리고 이 논쟁 과정에서 설득력 있게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차기 정치인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말싸움이 아니라 정책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으로 검증받은 정치 신인의 탄생이다.

정책 토론의 큰 시장이 열리고 정치 효능감이 급상승한다. 내가 낸 세금이 내가 원하는 사업에 쓰일 수 있다는 신념이 생긴다. 전문가, 유튜버, 연예인들이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필요한 정책을 논쟁한다.

왜 14세 이상일까? 형사처벌이 가능한 나이라면 국가의 예산 배분에도 관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민주주의 토론의 장이 열린다. 국민에게 돈을 주는 것보다 예산권을 주는 것이 더 민주적이고, 어쩌면 더 생산적인 국민배당일 수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