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성동훈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종합적으로 규율하는 법률을 만들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현재 수사기관은 각자 마련한 내부 규정에 따라 피의사실 공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인권위는 15일 “형사사건 관계인의 피의사실, 신상정보 및 수사 진행 상황 등 관련 정보가 명확한 법률상 근거 없이 공개되고 있다”며 “형사사건 관련 정보 공개에 관한 통일적 법률을 제정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가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 별도 입법을 추진할 것을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권위에 따르면 현재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은 특정 사건 수사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를 각자 내부 공보 규정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건이라도 기관에 따라 정보의 공개 여부와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인권위는 진단했다.
인권위는 피의사실 공표는 수사를 받는 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의 인격권과 사생활, 무죄추정 원칙 등을 침해할 수 있어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2023년 마악류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사망한 배우 이선균씨 사건을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 관행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모든 수사기관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형사사건 관련 정보 공개의 요건·절차·범위 등을 명확히 규정하는 통일적인 법률의 제정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해당 법률에는 피의사실은 예외적으로 공개한다는 원칙과 공개 방법, 공개 대상자의 의견 진술권과 이의 제기권 보장 등을 담으라고 권고했다. 피의사실 공표죄를 규정한 형법의 개정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특별법 형식으로 추진하라고 제안했다.
인권위는 피의사실 공표 관련 법률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입법 취지에 맞는 조치를 하라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권고했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하거나 공개 소환하는 수사·공보 관행을 개선하고, 피의자 등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필요한 보호 조치를 마련하라고 했다.
인권위는 피의사실 공표에 따른 공익이 피의자 기본권 보호보다 “현저하고 명백히 우월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고도 했다. 각 수사기관이 피의사실 공표 이유로 드는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요청’,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 등은 추상적이라며 이를 구체화하라고 했다. 인권위는 각 수사기관에 “법률·인권·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위원이 과반수 참여하는 독립적인 사건공개심의위원회를 설치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