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제공하는 대가로 20%의 통항료를 징수하겠다던 결정을 하루 만에 뒤집고, 이를 중동 국가들의 무역 협정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중동 지도자들과의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나는 미국의 20% 통항료를 걸프국가들의 무역·투자 협정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투자 규모는 막대할 것이며, 동시에 그들(걸프국)의 미래에도 대단히 유익할 것”이라면서 “이 새로운 투자로 공장과 생산시설, 장비가 역사적 수준으로 미국에 쏟아져 들어와 수백만개의 고임금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승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알리 알자이디 이라크 총리와의 회담 자리에서도 통항료 징수 방침을 하루 만에 번복한 이유에 대해 “통항료를 부과하지 않는 대가로 미국에 투자하겠다는 여러 나라, 여러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다”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등과 통화했는데 그들 모두 미국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하면 통항료가 면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통항료 부과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이게 더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통항료를 빌미로 대미 투자를 얻어내려는 이 같은 방식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를 앞세워 거액의 대미 투자를 받아냈던 것과 똑같은 전략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등은 이란 전쟁 전에 이미 미국에 향후 2조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블룸버그 통신은 걸프 지역 국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처럼 새로운 투자를 약속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이 사안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적어도 한 국가는 통항료 면제 대가로 대미 투자를 늘리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 등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걸프 지역 외 국가들에게도 통항료에 상응하는 투자를 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호르무즈 해협의 수호자’로서 안전과 안보를 제공하는 임무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운송 화물의 20% 비율로 보상받겠다면서 통항료 징수를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20% 통항료가 실행에 옮겨지면 원유 운송 비용이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며 실현 불가능한 수치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항료 부과 결정도, 이를 번복한 결정도, 즉흥적이고 독단적으로 내린 것으로 보인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항비 구상은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도 충격을 안겼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통항료 부과 방침을 밝힌 지 몇 시간 만에, 참모들은 통항료를 누가 징수해야 하는지를 논의하느라 바빴다고 보도했다. 일부 관계자는 재무부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관계자는 석유와 관련됐으니 에너지부가 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WSJ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백악관 참모들과 함께 향후 며칠 동안 통항료 부과 계획을 어떻게 추진할 지를 놓고 회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르웨이에 본사를 둔 자동차 해운·물류 기업인 ‘발레니우스 빌헬름센’의 라세 크리스토퍼르센 최고경영자는 “상황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역 정상화를 결정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