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변방의 소도시 난하카마. 이곳에는 6년 전 모든 주민이 죽거나 떠나 유령 마을이 된 작은 촌락이 있다. 시는 이 마을의 빈집에 외지 사람을 정착시킨다는 이른바 ‘I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예측불허의 사건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리소설 <I의 비극>의 줄거리다. 소멸위기 앞에서 행정력과 돈을 쏟아붓는 이 가상의 공간은,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이 민선 8기 지방의원의 수의계약 내역을 전수조사한 ‘의원님은 수주왕’ 기획 취재 과정에서 들여다본 경북 의성군을 떠올리게 했다.
난하카마는 인구 6만명 정도에 네 개 도시를 합병한 광활한 지자체로 묘사된다. 의성군도 인구 4만8000명에 기초단체 중 10위, 서울시의 2배에 가까운 면적을 지니고 있다. 인구위기에 대응하는 방식도 닮았다. 의성군의 ‘예술가 일촌맺기’는 젊은 예술가를 초빙해 장기적으로 지역에서 터전을 일굴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지난 4년간 354억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도 확보했는데, ‘행복 보금자리 조성’ 등 주로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에 쓴다. 성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일촌맺기는 의성군의회에서조차 참여자들과 이후 연결이 끊긴다면서 “2억원을 지원했는데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설 ‘I의 비극’ 닮은 경북 의성군
2차 종합병원은 단 한 곳뿐인데
사익 챙긴 수의계약 의원 수두룩
정책 결정할 힘 가진 시민이 나서야
살 집이 없어서 정착이 안 되는 걸까. 지난달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의성의 현실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의성에는 2차 종합병원이 단 한 곳뿐이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김인기 병원장이 대부분의 과를 진료한다. 군 유일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도 이 병원에 있는데, 김 원장이 초빙한 팔순의 대학 은사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는 “여기 아니면 구미, 대구, 안동까지 가야 한다”며 “아는 분 중 아이가 3명인 공무원이 있는데, 발령받아 이사 오고도 병원이 없어서 다시 나간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416일 동안 혼자서 응급실을 지키다가 버티지 못하고 운영을 중단했다. 그러면서도 “병원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사고 난 사람이 상주까지 실려갔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지혈만 했어도 돌아가실 분이 아닌데, 참 죄송하더라”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단순 비교지만 의성군보다 인구가 적은 영월군도 영월의료원을 운영한다. 한 해 예산이 400억원 규모이고, 최근 국비를 포함해 1427억원을 들여 신축 이전도 결정했다. 연간 예산 1조원이 넘는 의성군은 왜 못할까. 지난 4년간 의성군이 발주한 공사 관련 계약만 7000억원이 넘는다. 물론 의사수급 등 의료원 설립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지역 사정을 재단할 순 없지만 하나의 실마리는 있다. ‘의원님은 수주왕’ 기획에서 확인해보니 자신과 관련 있는 업체로 관급공사 등 수의계약을 딴 지방의원이 전국에서 가장 많았던 곳이 의성군이다. 한 전직 의성군의원은 업자로부터 “당신만 안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의성만의 문제도 아니다. 전남 광양시에서는 세금으로 개인 매실밭 길을 포장했다. 지자체 사업 내역을 보면 비슷한 이름의 토목공사가 수두룩하다. 꼭 필요한 곳도 있었겠지만, 우선해야 할 사업이 뒷전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까.
소설 속 난하카마에서도 정착민들이 하나둘씩 떠난다. 아이가 사고를 당했던 정착민은 말한다. “위험한 곳을 찾아간 건 아들 책임입니다. 그걸 막지 못한 건 우리 부부 책임입니다. 다만 병원으로 이송되는 데 두 시간 넘게 걸린 건 아이 탓도 우리 탓도 아닙니다.” 이들이 떠난 건 예측불허의 사고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사고를 딛고 일어서게 할 구조가 없었던 탓이다. 정착 사업을 둘러싼 이 미스터리의 진상 역시 ‘지역에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닿아 있다.
의장직을 노리고 당선되자마자 탈당하는 지방의원, 이권 개입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군수들이 이 질문을 고민할 것 같지는 않다. 지방자치제 자체는 무익하지 않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 의성군의원 시절 조례를 발의해 학교 급식비 지원의 첫발을 떼게 한 것을 뿌듯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 울산 업무보고 당시 울산의료원 설립을 요청받고 ‘의료원을 만들려고 성남시장이 됐고 그렇게 했다. 울산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정책을 결정하는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다. 급식비 조례와 수의계약 수주왕은 같은 제도에서 나왔다. 난하카마와 달리 의성 이야기는 미완이다.
황경상 기획취재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