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검열 이미지. 픽사베이 제공
팝스타 프린스의 ‘달링 니키’는 1985년 미국에서 ‘대중가요감시단’(PMRC)을 탄생시킨 문제작이다. 당시 앨 고어 상원의원의 부인 티퍼 고어는 11세 딸이 듣고 있던 성적인 노래 가사에 충격을 받고 정·재계 고위층 부인들과 뜻을 모아 PMRC를 출범시켰다. 그들은 남편의 영향력을 십분 활용했고, 우리가 익히 아는 경고 딱지를 음반에 붙이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음반산업협회 등급 표시 ‘Parental Advisory’(부모의 지도가 요구됨)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조처는 곧 대중의 반발을 불렀다. 달링 니키가 수록된 앨범 <퍼플 레인>은 미국에서만 1300만장 이상 팔리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PMRC는 1990년대 중반 해산됐다.
한국에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축음기 레코드 취체규칙’을 공포하면서 음반 검열이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7년엔 ‘음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이를 근거로 온갖 것을 법으로 규제했다. 송창식의 ‘왜 불러’,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지금도 왜 금지곡이 됐는지 알지 못한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가요 검열제’는 1996년 헌법재판소가 가수 정태춘이 제기한 위헌소송에서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60년 만에 폐지됐다.
최근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음원 유통사가 청소년 유해성을 사전 검사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 모욕 표현이 담긴 공연을 개최하려던 래퍼 리치이기, 인천의 10대 청소년들이 강간·마약·살인 등 범죄 조장 음원을 발매해 공분을 일으킨 게 도화선이 됐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심의가 이미 노래를 들은 시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그 공백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발의안이 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음원 유통을 제한하겠다는 선의에서 비롯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엄혹한 시절에도 검열 명분은 국민 보호였다. 게다가 유해성 판단 책임을 유통사에 떠넘긴다면, 몸을 사리느라 ‘검열’의 늪에 빠질 것이 자명하다.
알다시피 무서운 일은 자의적으로 남용되는 검열의 잣대다. 청소년이 만든 유해 음원만 유통을 금지하는 건 나이를 이유로 창작 자격을 박탈하는 차별이기도 하다.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일 아닌가.